평양 대동문은 북한의 국보 제4호로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성문이다. 고구려 시기인 6세기에 세워져 평양성의 동문 역할을 했으나 당나라의 공격 등으로 파괴된 것을 조선 중기인 1635년(인조 13년)에 다시 세웠다.
이 문은 대동강 기슭에 있어 강을 건너는 적을 바로 마주하기 때문에 평양성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문 밖의 덕바위 아래쪽에는 옛 나루터가 있는데, 고구려 때부터 조선 말기까지 배타는 사람들로 흥청거렸다고 한다. 대동문 건너편이 ‘선교(船橋)’라고 불리게 된 것도 이곳에 배다리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지명은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중구역(대동문 소재 구역) 건너편 구역을 선교구역이라고 부른다.
또한 고구려의 건축물을 이어 발전시킨 조선 전기 건축의 형식과 구조를 보여 주는 건물로서 장엄함과 아름다움, 경쾌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성문 건축물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대동문은 조선시대 말기까지는 방어시설로써 수원화성의 장안문이나 팔달문같이 반원형 형태의 옹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훼손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의 전체 높이는 19m이고 석축은 6.5m, 문루는 정면 3칸(15.9m), 측면 3칸(10.34m)의 중층 팔작지붕 누각이다. 축대는 화강석을 다듬어 정교하게 쌓았고 그 복판에 무지개문길을 내었다. 평면상 네 모서리를 바깥쪽으로 점차 넓혀 힘을 잘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기둥은 모두 흘림기둥 형식으로 하였다. 네 모서리의 기둥은 다른 것에 비하여 좀 굵고 높게 하면서도 안으로 약간 기울게 세웠는데, 이것은 건물의 균형을 바로잡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문루 1층(현재는 2층)에는 읍호루라는 초서체 현판이 붙어 있는데 조선중기의 명필이자 "태산이 높다하되..." 시조로 유명한 양사언의 작품이다. 읍호는 문루에서 손을 내밀어 대동강의 맑은 물을 떠올린다는 뜻으로 주변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대동문 옆 종각에는 평양종이 있으며 개성의 연복사종, 강원도 평창 상원사동종, 경주 성덕대왕신종, 천안 성거산 천흥사동종과 함께 우리나라 5대 명종의 하나이다. 종의 형태는 6등분으로 나누어져 단마다 각각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다. 사천왕상, 팔괘 문양이 보인다. 제일 하단에는 구름 문양이 새겨져 있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예술품이다.
평양종은 1890년대까지 평양시민들에게 비상경보와 시간을 알려 주었다. 현재의 종은 1726년 다시 만든 것으로 높이 3.1m, 직경 1.6m, 무게 13.5t으로 북한의 국보 제23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