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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국보(13)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승전을 기념한 북관대첩비...일제 강탈후 되찾아
북한의 국보(13)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승전을 기념한 북관대첩비...일제 강탈후 되찾아
  • 윤형선 기자
  • 승인 2022.07.06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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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 중 일본군이 치욕적인 역사 부정하기 위해 강제 반출해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
조소앙 선생이 발견한 후 남북합작으로 반환운동. 남한 전시후 원소재지 김책시에 안착해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는 북한의국보 제193호로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북평사였던 정문부 장군이 1592(선조 25) 9월부터 15932월까지 함경도 북부에서 의병을 규합해 왜군 정예인 가토 기요마사 군을 격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숙종 때 세운 전승비이다.

함경도 북평사 최창대가 1707(숙종 34)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리(현 김책시 임명동)에 세운 대첩비는 1905년 러일 전쟁 중에 일본군 이케다 마시스케 중장이 자신들에게는 치욕적인 역사라며 일본으로 강제 반출해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토록 했다.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로 침공한 왜군을 격파를 기념해 세운 북관대첩비의 모습. 현재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리(현 김책시 임명동)에 있다.(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로 침공한 왜군을 격파를 기념해 세운 북관대첩비의 모습. 현재 함경북도 김책시 임명동에 있다.(사진 조선의오늘)

당시 한국에서는 강제반출을 알지 못했으나 1909년 일본 유학생이었던 조소앙 선생이 야스쿠니에서 북관대첩비를 발견하여, 비를 가져온 일본을 꾸짖는 글을 기고하면서 북관대첩비의 소재가 밝혀지게 되었다.

해방과 함께 곧이어 터진 6.25 전쟁으로 인해 대첩비의 존재가 잊혔으나 1978년 국제한국연구원장 최서면 선생이 우연히 조소앙 선생의 기고문을 보고 야스쿠니 신사에서 다시 비를 찾아내면서 대첩비의 한국 반환 요구가 본격화 되었다.

같은 해 정문부 장군의 본관인 해주 정씨 문중에서도 한일친선협회를 통해 야스쿠니 신사 측에 처음으로 비 반환을 요청하였고, 1979년 한국 정부의 비 반환 공식 요청에 일본 정부는 원소재지인 북한과의 합의가 있으면 반환하겠다고 답했다.

계속된 반환 요청에도 일본 정부는 북한과의 합의를 요구했으며 점유자였던 야스쿠니 신사측도 반환 요구에 응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 반환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20053월 남한 한일불교복지협회와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이 비 반환에 관한 남북합의서를 체결했고 같은 해 6월 한일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반환에 합의했다.

2005년 한국으로 반환된 북관대첩비를 맞이해 이해찬 국무총리 등 관계자들이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사진 문화재청)
2005년 한국으로 반환된 북관대첩비를 맞이해 이해찬 국무총리 등 관계자들이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사진 문화재청)

한국으로 옮겨진 비는 200510월 환국고유제를 지내고 11월초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앞마당에 전시된 뒤 20063월 원 소재지인 북한의 함경북도 김책시 임명동으로 돌아갔으며 남한에는 국립고궁박물관, 독립기념관, 의정부시 용현동 정문부 장군 묘역, 진주 충의사 등에 복제비가 남아있다.

북관대첩비는 남북이 합작해 반출문화재를 반환하는데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에도 불상 등 불교문화재와 조선왕실의궤 등 미국과 일본 등에 소재한 문화재 반환의 근거가 되고 있다.

우여곡철 끝에 돌아온 북관대첩비는 높이 187, 너비는 66, 두께는 13이며 1,432자의 글이 새겨져 있으며 비를 세우는데 앞장선 북평사 최창대의 발문이 남아있다.

 

  남쪽에서 도적이 와 명나라를 치려드니 우리는 이웃이 되어 온 나라가 화 입었네.

   높고 높다 북방이여 오랭캐 소굴 되니 어리석은 백성들이 저항없이 따르도다.

   피 머금은 입으로 흉한 독을 뿜을 적에 씩씩하다 우리 군사 뭇호걸 헌걸차다.

  군사란 정의가 제일, 창과 활이 부질없어 반역자 무찌르니 저 도적 못 덤비네.

  병정들 북을 치니 산이 무너지듯 바다가 끓듯 우리 군사 빛난 전술 흉한 적을 무너지네.

  천벌을 내리게 함 사사 아닌 충성 때문이거니 북쪽 땅 평정되어 누에치고 농사짓네.

  임금은 감탄하며 누가 그대의 공보다 더 하겠느냐? 벼슬주고 사액하고 한결같은 은혜로다.

  선비기풍 열렬하니 백성들도 용감하고 임명 바닷가에 우뚝한 돌이 있어 찬송을 거기 새겨

  영원토록 보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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