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의 그림, 고승 휴정과 유정 도술 겨루며 사제관계를 맺은 설화로 유명
장하던 금전 벽우
찬 재 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 가곡 ‘장안사’로 널리 알려진 금강산 장안사(長安寺)는 북한의 국보 96호로 강원도 금강산의 내금강 지역에 있는 사찰이다. 장안사는 일제 강점기까지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장연리에 속해 있었으나, 북한이 1952년 금강군을 신설하면서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다.
창건과 관련해서는 신라 법흥왕 때 처음 세워졌다는 설과 551년(양원왕 7) 고구려의 승려 혜량이 신라에 귀화하면서 왕명으로 세웠다는 설이 있다. 이 때 비로전을 짓고 비로자나 철불을 봉안했으며, 대장경을 절에 보관했고 오층탑을 세웠다고 한다.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거의 1,500년 가량을 금강산의 대표 사찰로 꼽혀 유점사, 신계사, 표훈사와 함께 금강산 관광의 필수 코스였다. 또한 신라시대 건축을 그대로 이어받아 보존되었다면 문화재적 가치가 높았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안사는 금강산 절경과 어울어지면서 많은 화가들이 화폭에 담았는데 그중에 잘 알려진 것은 겸재 정선이 금강산 일대의 경치를 13폭의 그림에 담은 ‘신묘년풍악도’속 모습이다. 불교계에서는 이 곳에서 조선의 고승 휴정(서산대사)과 유정(사명대사)이 서로 도술을 겨루며 사제관계를 맺은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신라 혜공왕 8년인 773년에 진표가 중수했고, 고려 광종 때 불탄 것은 고려 성종 때 다시 중건했다. 고려 출신으로 원 순제의 정비가 된 기황후가 원나라 황실의 번영을 빌기 위해 고려 말엽인 14세기에 중창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도 여러 차례 중건과 중창을 되풀이하다가, 1842년에는 신정왕후의 아버지인 조만영이, 1863년에는 안동 김씨 세도가로 알려진 호조판서 김병기가 보시하여 증축한 일이 있다. 장안사는 대웅보전과 서성전을 두 축으로 삼아 양 구역에 비슷한 모양으로 건물이 배치되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한국 전쟁 중인 1951년에 폭격을 받아 수십 채의 건물이 완전히 소실되어 터와 탑 일부만 남아 있다. 표훈사를 복원한 바 있는 남한 불교계는 금강산의 명찰인 장안사를 복원하여 유점사와 함께 불교 성지 순례지로 조성하기를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