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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가가 북한 TV에 울리던 날 ... 2008년 뉴욕필 평양공연
미국 국가가 북한 TV에 울리던 날 ... 2008년 뉴욕필 평양공연
  • 임미리 기자
  • 승인 2022.11.13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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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계속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미국 중간선거 기간에도 이어졌다. 또 중간선거에서 예상 밖의 선전을 한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간주하고 미군 주둔 강화와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처를 언급하고 있다. 북미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미국 국가가 조선중앙TV에서 흘러나온 일이 있다. 2008년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공연 때였다.

뉴욕필의 평양 공연은 처음부터 뜻밖의 모습으로 전개됐다. 평양 공연을 처음 제안한 곳은 어느 국제평화단체도 미국 정부도 아니었다. 바로 북한 정부였다. 

2007년 8월 1일 뉴욕필 사무국에 북한 문화부 명의의 영문 초청장이 팩스로 도착했다. 앞서 2006년 10월에는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미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북미간 문화교류의 물꼬를 튼 상태였다.

국가 간 긴장을 완화시키는 도구로 문화나 스포츠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선 정치적 논란, 특히 반대 여론이 적지 않았다. 뉴욕필의 평양 공연이 평화로 가는 마중물이 될지, 아니면 북한체제를 선전하기 위한 도구가 될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곡 선정 과정을 문제 삼기도 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리처드 알렌은 유욕타임즈 기고에서 북한에서 연주할 곡목이 김정일 위원장의 ‘허가’에 따른 것이어서 ‘예술적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음악회 프로그램의 결정권은 어디까지나 뉴욕필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평론가 테리 티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뉴욕필은 “꼭두각시 놀음에 참가함으로써 부도덕한 북한체제에 정당성이라는 힘을 실어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뉴욕필은 공연 초청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기념비적인 자리였기 때문이다. 뉴욕필 자린 메타 사장은  “우리는 위대한 음악을 연주할 뿐이다. 우리는 정치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공연 철회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2008년 2월 26일 드디어 뉴욕필의 역사적 평양 공연이 동평양대극장에서 진행됐다. 지휘자는 로린 마젤이었다. 조선중앙TV와 MBC가 공연을 생중계했다.

여성 사회자가 시작 멘트가 공연의 막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뉴욕교향악단의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지휘는 악단의 이름 있는 지휘자인 로린 마젤 선생이 하겠습니다.”

관객의 박수 속에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무대에 올랐다. 공연의 오프닝은 북한의 ‘애국가’였다. 로린 마젤이 지휘봉을 들고 오케스트라가 첫 소절을 연주하자 관객들이 모두 일어났다. 관객 중에는 최문순 당시 MBC 사장을 포함해 우리측과 미국측 관계자도 있었다. 다만 북한 관객들이 소리 내어 애국가를 부르지는 않았다.

이어서 미국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가 연주됐다. 마찬가지로 북한 고위관료와 인민을 포함한 모든 관객이 일어나 연주를 들었고 모든 과정은 MBC뿐 아니라 조선중앙TV에도 그대로 중계됐다.

뉴욕필은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거슈인의 교향악적 재즈곡 '파리의 미국인'ㅇ ㅣ연주되고 앙콜곡으로 비제의 '아를의 여인' 중 유명한 '파랑돌'이 빠른 리듬으로 경쾌하게 연주되었다.

기립박수가 이어지자 지휘자 로린 마젤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두 번째 앙콜곡을 소개했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캔디드 서곡'이었다. 두 번째 곡은 지휘자 없이 연주됐다. 로린 마젤은 번스타인이 지휘한다고 상상해달라면서 우리말로 '부탁해요'를 남기고 퇴장했다.

마지막으로는 북한 작곡가가 편곡한 오케스트라 곡 '아리랑'이 연주됐고 역사적인 공연도 막을 내렸다.

2018년 싱가폴 북미정상회담에서 평화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려졌다가 2019년 하노이 회담 이후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2018년의 감동은 사기로 기억될 뿐 지속되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 뉴욕필 공연이 선사한 감동은 아직까지도 여러 사람의 마음에 여운이 남아있다. 다시한번 미국 국가가 조선중앙TV에서 울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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