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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민 목사 “남북간 분배와 나눔운동은 전쟁을 막는 일”
강경민 목사 “남북간 분배와 나눔운동은 전쟁을 막는 일”
  • 백찬홍 기자
  • 승인 2022.02.14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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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운동, 북한의 자존심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가능한 소리소문없이 사업 진행
북한국력보다 50배넘는 남한이 한반도 전체 분배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전쟁 가능성 높아

사단법인 남북나눔운동1992년 창립발기인대회를 시작으로 지난 30년간 한국교회내 남북교류운동의 중추역할을 했다. 현재까지 약 1,500억 원을 지원해 민간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지원 실적을 기록했다.

강경민 목사는 총신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남서울교회(홍정길 목사)에서 10년 동안 부목사로 사역했고 1995년 일산은혜교회를 개척했다. 이후 남북나눔운동 이사 및 사무처장, 성서한국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 고양평화누리 공동대표, 학교법인 여명학교 이사장, 젊은 사역자를 양성하는 기독연구원느헤미야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교계에서 우국지사형 목회자로 알려져 있으며 약력처럼 은퇴이후에도 활발하게 통일문제와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 남북 교류 운동을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는지요. 계기 등을 말씀해주십시오.

우리사회가 통일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후라고 생각합니다. 광주를 통해 분단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사회모순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때부터 저도 자연스럽게 통일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개인적으로 목회자로서 정체성이 분명했기 때문에 무슨 사회운동가나 통일 운동가 이런 입장은 아니였습니다.

-. 남북나눔운동 발족과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나눔운동은 남서울교회 담임으로 계셨던 홍정길 목사님이 주도하셨습니다. 9212월 남서울교회에서 창립발기인대회를 가진 뒤 934월에 정동제일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했습니다. 당시 저는 남서울교회 부목사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남북문제가 우리사회에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기 떄문에 소속교회가 보수적이기 했지만 저는 물만난 고기처럼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 나눔운동은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가 함께하는 보기 드문 모델이라고 들었습니다.

굉장히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창립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그때는 이른바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기 때문에 진보에서는 민주화 운동보다는 통일운동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교계 통일운동은 진보진영 교회연합기구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총무인 권호경 목사님과 통일국장인 김영주 목사님이 앞장섰는데 북한의 처지를 고려해 나눔운동은 통일운동보다는 북한을 돕는다는 입장에서 보수교회가 리더역할을 하기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 원칙하에 사람을 찾다 장로교회를 대표하는 충현교회의 담임인 신성종 목사님이 사무총장으로 거의 내정됐지만 그 당시 원로목사이자 교회에서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김창인 목사님이 반대하셔서 신 목사님이 못하게 됐습니다.

그럼 누가 할 것인가 찾는 과정에서 홍정길 목사님에게 차례가 왔습니다. 홍 목사님도 처음에서는 여러 고민을 많이 하셨지요. 당시만 해도 북한과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손가락질 하던 시대였거든요. 그러다 홍 목사님이 이게 옳은 일이라면 회피할 수만은 없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면서 결단을 하셨고, 저도 당시에 행정 목사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목사님이 이 운동을 하시면 저도 힘 있는 대로 돕겠습니다라고 했지요.

그리고 홍목사님이 실무를 주도할 사람이 없다고 하셔서 제가 같은 교회 이문식 목사님을 적극 추천했고 이 목사님이 기획실장으로 나눔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사로 참여하고 이후에 사무처장도 맡게 됩니다.

-. 북한과 교류협력을 하면서 세웠던 원칙이 있었습니까?

홍정길 목사님께서는 북한을 말없이 소리 소문 없이 돕는다는 원칙을 세우셨습니다. 사실 북한이 어렵습니다라는 홍보를 많이 해야 모금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쪽에서 보면은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요. 그래서 홍목사님은 북한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꾸준히 그렇게 원칙을 가지고 하니까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결국 성공했습니다. 그동안 홍 목사님은 외부 인터뷰라든가 이런 걸 거의 하지 않았어요.

또 하나의 원칙은 북한의 요구대로만 하지 않고 현금으로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 이었습니다.

북한 가더라도 김일성 동상이나 비슷한 곳에 가서 기독교적 입장에 반하는 어떤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지켰고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도 나눔운동의 진정성을 알고 나서 우리를 이해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북한 관계자들이 다른 단체 관계자들과 술자리에서 하면서 우리를 도우려면 홍정길 동무 같이 하라이런 식으로 말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습니다

-. 나눔운동을 하시면서 아쉬운 점을 없었습니까?

아쉬웠던 것은 나눔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주 성공을 했는데 남과 북이 과거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적으로 하나가 되는 즉 평화통일운동으로 나가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게 나눔운동의 태동부터 한계가 있었다고 봅니다. 아무튼 나눔운동의 정신이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도 할 수 있지요.

-. 그 아쉬움을 어떤 식으로 전환하시고 활동하셨는지요

진보와 보수가 다른 것은 몰라도 통일 문제에 대해서만은 하나되고 연대해서 평화통일을 추진해보자는 취지에서 2010년에 평화통일을 위한 기독인연대를 만드는 데 관여하고 참여도 했습니다. 저를 비롯해 예장통합의 이근복 목사님, 연대 교목실장을 하시는 정종훈 목사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이면서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 통일부문을 책임지고 있었던 허문영 박사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게 됐습니다.

그렇게 6년 정도 활동하면서 남북관계 현황이나 한반도 평화에 관련된 좌담회와 포럼, 성명서 발표, 통일대회 등을 했는데 사단법인으로 전환하려고 하니까 통일부에서 종교 이름이 들어가면 안 내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꼭 기독인 이렇게 꼭 붙이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생각에 평화통일연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됐고 현재는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 평화통일연대의 주요활동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우선 남남등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평화담론위원회를 만들어 평화통일을 위한 담론을 만들어나가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북상생운동 본부를 만들어 북한돕기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 1억 원 정도 지원한 것 같습니다.

-. 북한돕기는 어떤 식으로 진행하셨는지요

미국 기독교인 중심으로 북한에 나무심기를 하는 원그린코리아무브먼트(OGKM)를 통해서였는데 대표가 한국인입니다. 김호진 장로님이라는 분인데 30년간 오로지 북한 녹화사업에 매달려 오셨죠. 우리가 진행한 사역은 세가지로 양묘장, 보건소, 육아원 건설이었습니다. 2018년 기준으로 각각 1억씩 3억을 목표로 했는데 현재 남북간에 막혀 있다보니 작년의 경우 고양시에서 5천만 원 지원받았던 것을 통일부에서 승인이 나지 않은 바람에 반환하게 됐습니다. 참 안타깝게 됐습니다.

-. 그 외 다른 사업도 있었습니까?

평화통일연대 주요 사업중 하나가 한반도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을 이루어가기 위해 디아스포라 한인들과 교류하면서 교류협력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단체가 했던 것을 앞으로 10, 20년 길게는 30년 후를 바라보면서 인재를 키우기 위한 것인데 국내에 유학하고 있는 한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현지에서 데려오려면 비행기값 등 경비와 언어의 한계 등 많은 장애가 있는데 한국에 온 유학생들은 우선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기 때문에 국내 거주 해외 한국청년들을 모아 평화교육을 시키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롤 모델이 독일에 있더군요. 30~40명 모아서 일주일 동안 훈련시킬 계획을 하니까 한 4천만 원 드는데 경기도에 평화교육사업이 있어서 응모를 했더니 채택이 됐어요. 교육은 파주와 제주 등에서 진행했고 특히 제주의 4.3 사건을 통해 많은 도전을 받기도 했습니다.

-. 북한과 교류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제가 북한지원 상태를 보기 위해 이른바 모니터링 멤버로 평화에 갔을 때 봉투에다가 20불 내지 30불 정도를 넣어서 편지를 썼어요. “예수 믿어라하면 위법이 되니까 그런 것은 쓰지 않고 나는 이렇게 예수를 믿는 사람이고 이러 이러한 생각으로 북한에 왔다면서 안내하는 이들에게 준 적이 있습니다.

오래된 이들은 그냥 받고 조용히 지냈는데 신참이 와서는 신고했어요. 그래서 이후에 간 분들에게 북한관계자가 그걸 내놓으면서 강경민 씨 같은 짓 하지 말아라광고를 했다더군요. 그걸 전해 듣고 다음에 나는 못 가는 거 아닌가하는 걱정을 했더니 아무 문제 없더라고요. 그 외에 우리가 가지고 갔던 가방 등 그쪽 친구들이 좋아할 것들 주기도 했지요.

또 하나 에피소드는 우리가 모니터링 할 때 작게는 10명에서 많게는 50여명 갈 때 책임 동지가 한명이 따라 오는데 우리로 말하면 국정원 직원같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가면 대화는 책임동지만 하고 다른 안내원들은 그냥 수동적으로 참여했어요. 그 책임동지라는 사람은 김정일 위원장이 모스크바 갈 때도 수행을 했고 부산 아시안 게임때도 왔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우리 보고 당신들 감시한다 하는데 자기가 부산 갔을 때는 우리보다 몇 배나 더 간섭을 많이 하더라고 한 것이 기억납니다. 사실 체제의 문제만 건드리지 않으면 정말로 그냥 우리 이웃집 동네 아저씨 만나는 것처럼 너무 다정다감합니다.

-. 북한과 교류할 때 공식 파트너는 어디였습니까.

처음에는 조선그리스도인연맹(조그련)하고 교류를 했는데 위상이 낮다보니 그쪽의 위상을 좀 높여주기 위해 노력을 했고 나중에는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이 파트너가 됐습니다.

-. 목사님께서는 예장 합신 소속으로 흔히 알려진 보수교단인데 북한과 교류할 때 어려운 부분은 없으셨어요.

우리 보수 교단 쪽은 대부분 전도를 목표로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중심으로 합니다. 그러다보니 북한과 교류협력하는 것을 무슨 목적을 가지고 돕는 것처럼 생각을 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옳지 않지 않느냐 이런 비판이 있긴 합니다. 그래서는 저는 어떤 동기를 가지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의 일에 동참한다는 마음으로 북한돕기에 참여하고 있고 그런 마음으로 하는 게 광범위한 선교라고 말해 줍니다.

-. 근래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복음주의권에서 개혁 운동을 40년 동안 해왔습니다. 복음주의청년운동, 성서한국운동외에 요즘은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기독연구원 느혜미야는 교회 개혁을 위해 새로운 것을 해보자 하는 차원에서 출발한 조직입니다.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비인가 신학교 문제인데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는 그걸 뛰어넘어 비록 규모는 작아도 뜻있는 학자 여덟 정도가 헌신적으로 참여해 신학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해에 평균 다섯에서 여섯 명 이렇게 졸업하면서 금년이 아마 5~6기 정도 될텐데 그중에는 여성들도 있어요. 제가 1, 2기 때에 안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을 때 한 여학생에게 안수를 준 것 때문에 면직을 당했습니다. 우리 교단에서는 헌법에 여성 목사를 세우는 것이 안 됩니다. 타협을 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그건 내 양심과 소신으로 한 것이고, 내가 타협하면 나한테 안수받은 그 여성 목사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하고 타협을 거부했습니다.

사실 면직이라는 건 목사직 자체를 없애는 거라 목사로서는 사형을 당한 거지요. 교단과 교권이 자행한 전형적인 인권 침해이기 때문에 민변을 통해 일반 법정에서 다투고 있습니다.

-. 지역에서도 평화통일운동을 하신 것로 압니다.

고양평화누리라고 십여 년 정도 되는데 NCCK에서 활동하셨던 최준수 목사님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주로 평화를 주제로 한 달에 한번 포럼을 해서 지금까지 90회 정도 했습니다. 지역에서는 인천이 가장 잘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인천 빼놓고는 고양이 가장 오래하지 않았나 할 정도로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 다른 주제로 옮겨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하노이 회담이 실패로 끝난 이후 북미,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있습니다. 다시한번 위기에 처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좀 더 근본적이면서 역사적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일본 중심의 해양 세력과 중국과 러시아 중심의 대륙 세력이 한반도에서 부딪친 지 1세기가 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를 스스로 평가하기를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존심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표현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의지하고는 전혀 관계없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자기들 이익을 중심으로 부딪치는 그런 현장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근래 우리가 국제적으로 성장하면서 다른 관점도 생기게 됩니다.

-. 어떤 관점인지요.

그 말을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무현 정부 때 초대 외무부 장관 했던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가 밖에서 있을 때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장관이 되서 들어가서 보니까 이제는 우리가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는 되더라고 했던게 기억이 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돌고래 정도가 아니라 중추적인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상적인 논리지만 그런 꿈을 이야기할 정도는 된 거지요. 하지만 우리가 역량을 100% 발휘한다고 해도 남북문제라는 게 우리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격돌 속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가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문제이면서 중요하다고 봅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래도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요.

돌고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은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케이스라고 봐요. DJ가 남북교류를 할 때 미국의 승인을 받고 한 건 아니잖아요. 먼저 일을 저질렀고 미국이 어쩔 수 없이 승인해줬지요.

좀 더 설명하자면 클린턴 정부시절 1차 북핵위기가 벌어졌는데 그때 영변 폭격을 기획했던 사람이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페리였습니다. 그 페리가 클린턴 2기 정부 때 남북문제 조정관으로 미국의 입장을 설명하려고 한국을 방문해 DJ와 임동원 씨를 만났는데 두 사람이 오히려 페리를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페리 회고록을 보면 어떻게 한국의 지도자들이 미국의 입장과 이렇게 다를 수 있냐 하면 너무 놀랐다고 합니다. 이후 DJ가 임동원 씨를 미국 특사로 보내 페리는 물론 클린턴을 설득해 소위 페리 프로세스라는 것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페리 프로세스가 아니라 임동원 프로세스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그걸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돌고래 역할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 문재인 대통령도 남북문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봐요,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질, 리더십의 문제 때문인데 트럼프나 바이든과 정면으로 대결하면서 어떻게든 북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리더로서의 기질이 좀 약하지 않나. 그래서 이런 상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사람 쓰는 일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데, 현재 문 대통령의 외교 담당자, 정의용 이 양반이 전통적인 외교관입니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판단력, 이런 게 약한 거예요.

-. 관료들이 주어지거나 시키는 일은 잘하지만 뭔가 돌파하거나 스스로 판단하는 게 좀 부족하죠.

그런 부분에 있어서 문 대통령이 DJ만큼 창의적인 그런 사고가 없는데다 전통적인 외교관 출신이 참모를 하다보니 현재와 같은 상황이 된 거 아닌가 합니다. 물론 문 대통령이 남북문제에 심혈을 기울이기는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 분 나름 진실성과 함께 애쓴 것도 있지요.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은 페리 프로세스임동원 프로세스했던 것처럼 국가적인 역량도 DJ 시절보다는 훨씬 더 커졌는데 왜 그걸 못 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연초에 조성우 전 민화협 상임의장님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분도 거의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문 대통령이 역사적 과제라고 생각하고 미국에 좀 거슬리더라도 한 발 더 나갔어야 한다고요.

. 아쉽죠, 그때에 비하면 우리 국력이 훨씬 더 돌고래 중에서는 아주 큰 돌고래가 된 거 아닙니까. 문 대통령도 2018년 말쯤 트럼프와 김정은이 서로 한 방 날린다는 등 언어적 폭력이 극에 달했을 때는 굉장히 세게 나왔었죠. “한반도에서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안 된다고도 했어요. 그러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 뭔가 될 듯 하니까 문 대통령이 그냥 따라가게 된 거예요. 아무것도 못 하게 된 건데 대통령 자신부터 창의적인 발상들이 부족했고 보좌한 참모들도 부족했습니다.

저는 박지원 국정원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서훈 안보실장 체제가 되면 뭔가 달라지지 않겠나, 이 카드가 실패한다면 이제 아무것도 못 한다 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남북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역할이라는 게 너무 크기는 큰가 보다 하는 생각도 합니다.

-. 북핵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요.

북핵관련 프로세스를 보면 2018427일에 판문점 남북정상 회담이 있었습니다. 그 기운이 연결돼 그해 6월에 싱가포르에서 북미간 최초의 정상회담 열리면서 네 가지 합의를 합니다. 북미간 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 한반도 비핵화, 미군 유해 송환인데 북한의 입장은 단계적으로 진행하자는 것이었는데 미국의 입장은 한꺼번에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한꺼번에 하겠다는 것은 가진 자의 폭력이죠. 그게 어떻게 한꺼번에 되겠어요. 미국은 워낙 많은 것을 갖고 있고 북한은 아주 작은 것을 갖고 있는데 시스템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그날로 방글라데시가 되는 겁니다.

역지사지하면 북한이야 핵 그것밖에 할 것이 없잖아요. 전략적 무기 체제는 게임이 안 되고 오직 가지고 있는 게 핵하고 미사일 밖에 없죠. 결국 우리 정부가 협상이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 했는데도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에게 사기를 당한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몇 날을 기차타고 갔음에도 그 꼴을 당했으니 하노이 트라우마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입장에서는 "너희들이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못 믿겠다고 하는거지요.

-. 목사님 남북 교류와 관련해서 이런 것은 꼭 하고 싶다. 이 일만은 내가 좀 주도적으로 하고 싶다는 그런 것은 없으셨읍니까

개인적인 소망이라기보다는 평화통일연대 차원에서 계획했던 것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힘들고 소모적일 수 있지만 평화 담론을 계속 발전시켜 남남 갈등을 극복하는 일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북한보다 50배나 더 많은 국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자존심을 흔들지 않으면서 돕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가난할 때 도움이 필요하지 있을 때 무슨 도움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 것처럼 북한이 어려울 때 많이 도와야 합니다.

넓게 보면 남북이 독립국가이기 때문에 북한이 무너진다고 해서 우리가 국경선을 넘으면 남의 나라를 침공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우리가 국경선을 넘을 수가 없어요.

동서독 통일 과정이 우리하고 많이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동독 시민들이 통일을 선택한 거 아니에요. 그런 것처럼 북한 인민들이 우리를 선택해야 하는데 지금 같으면 되겠어요. 북한이 우리를 선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도와야 그들이 우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북아 평화교육원 활동을 통해 10, 20년 후를 책임질 수 있는 평화 지도자들을 양육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 말씀이 나왔으니 마지막으로 남북교류나 북한에 대한 지원이 왜 필요한 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남북이 한국전쟁이후 70년 동안 전면전을 안 하고 살다보니 이 전쟁은 우리하고 상관없다라는 게 남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좋은 부분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건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는 지구상에서 어떤 곳보다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그런 폭발성이 제일 강한 그런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안 된다는 마음으로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 집중해야 합니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가 말하기를 기원후 부터 1800년대 산업혁명전 까지 인류의 부가 5배 증가했지만 1800년대 이후 2000년까지 약 200년 동안에 총 생산량이 100배 증가가 했다고 합니다.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다 보니 첫째는 그걸 어떻게 분배해야 하느냐, 분배 문제가 이전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긴급성이 생겼고 동시에 생태계 파괴도 아주 급속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현대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중 하나는 분배이고 또하나는 생태계 복원이라고 합니다.

남한의 국부도 전쟁이후 폭발적으로 증대됐습니다. 그만큼 남한에서도 부의 분배가 큰 과제인데 분배의 대상으로 북한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지자는 의미이지요. 그만큼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 날 또다시 비극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평화의 기운을 진작시키는 일에 우리 국민들이 좀 더 에너지를 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긴 시간 동안 말씀 감사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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