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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헌법재판소, 이런 결정 하려고 2089일 끌었나
[특별기고] 헌법재판소, 이런 결정 하려고 2089일 끌었나
  • 권태준 / 변호사
  • 승인 2022.02.02 1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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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전면중단 합헌 결정... 남북경협 부관참시와 다름없어
줄지어 개성공단 철수하는 화물차량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1일 오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물품을 싣고 줄지어 복귀하고 있다. 2016.2.11.(사진-유성호)
줄지어 개성공단 철수하는 화물차량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1일 오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물품을 싣고 줄지어 복귀하고 있다. 2016.2.11.(사진-유성호)

명절 연휴를 앞둔 지난 1월 27일, 헌법재판소의 개성공단 전면중단 합헌 결정이 있었다. 

통일부장관의 개성공단 전면중단 성명이 발표되었던 2016년 2월 10일도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긴박한 상황이 일단락된 후,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그해 5월 9일 헌법재판소에 대통령과 통일부장관을 상대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기본권 수호의 마지막 보루였고, 헌재에 이 사건의 당부를 묻는 것 외에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었다. 

이번 결정이 나오기까지 걸린 기간은 2089일, 약 5년 9개월. 헌재 홈페이지에 평균 사건처리 기간이 1년 2개월이라고 안내되어 있는 것에 비추어 이례적으로 오래 걸린 셈이다.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재판관은 무오류의 신이 아니다. 민주국가에서 판결에 대한 공론과 비평은 재판관의 권한 속에 내재되어 있는 부담이다.

필자는 과거 개성공단 주재원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법률가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초기부터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 이번 헌재의 합헌 결정 소식을 듣고, 헌재가 도대체 어떤 근거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결정문을 입수하여 읽어보았다.

사건 기록을 전부 꼼꼼하게 읽지 못한 상태에서 판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늘 조심스럽다. 다만, 여기서는 앞으로의 공론과 비평을 위해 이번 결정에 대한 두 가지 논점만을 밝히려 한다.

교류협력법에 근거한 조치라고 보아도 괜찮은가

이번 결정의 여러 이유 중에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는 협력사업 조정명령에 관하여 규정한 교류협력법 제18조 제1항 제2호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부분이 있다.

‘협력사업’과 ‘조정명령’은 대북사업 실무에서 쓰이는 교류협력법 용어다. 간단히 말하면, “협력사업”이란 '남북 주민이 공동으로 하는 모든 활동'을 말하며, 협력사업을 하려면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만약 국제평화 및 안전유지를 위한 국제적 합의에 이바지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면, 통일부장관이 협력사업의 내용·조건 또는 승인의 유효기간 등에 관하여 필요한 조정을 명할 수 있다. 이를 “조정명령”이라고 한다. 다만 협력사업 조정명령은 서면으로 해야 한다.

협력사업 조정명령을 서면으로 하도록 한 것은, 당사자가 그 조정의 범위와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만약 그 명령에 불복하려는 경우 불복의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이다. 즉, 당사자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어서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의 통지 과정을 살펴보자. 헌재 결정문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북한의 2016년 1월 6일 제4차 핵실험,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하여, 대통령이 2월 10일 개성공단의 전면중단을 결정했다. 그 이후 통일부장관이 당일 14시에 개성공단 기업협회 회장단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과 세부 이행방안을 통지했다. 그리고 당일 17시 통일부장관의 개성공단 전면중단 관련 성명 발표가 있었다.”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 청구인 중 통일부장관으로부터 협력사업 승인을 받은 사람만 145명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통일부장관으로부터 이 145명에 대해 개별적으로 '당신이 언제 승인받은 무슨 협력사업을 어떻게 조정한다'는 내용의 서면 통지가 있었는지, 만약 2월 10일 당일 상황이 긴박했기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면 상황이 정리된 나중에라도 서면 통지가 있었는지, 서면이 아니라면 구두로라도 그러한 통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번 헌재 결정문에 아무런 기재가 없다.

단순히 종이 한 장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다.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 성명을 발표한 통일부장관의 의사가 ‘교류협력법상 협력사업 조정명령으로서 발표하고자 하는 의사’였는가, 그리고 그 의사가 상대방인 개성공단 기업인들에게 표시되었는가, 그리고 이를 두고 ‘교류협력법에 근거한 것’이라고 판단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통일 분야의 행정이 아무리 특수하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은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이 통일 분야의 특수성을 이유로 부실한 절차를 정당화하는 데에 악용될까 우려된다.

대북사업 위험은 각자가 부담하는 것인가

우리 정부는 2016년 개성공단 전면중단 이전까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개성공단 중단을 주도한 적이 없다. 개성공단 기업들에게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을지라도 우리 정부는 적어도 2016년 이전까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개성공단 사업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 왔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직접 주도하여 개성공단을 중단한 것은 2016년 2월 10일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2004년 개성공단 출범 이래 세 차례 핵실험에도 국가적 지원이 보장되었고,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등으로 인한 5.24조치 때도 통상적인 사업활동은 여전히 보장되었다. 그간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을 닫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지만 헌법재판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4년 개성공단 출범 이래, 북한은 2006년, 2009년, 2013년 이미 세 차례의 핵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2007년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유지돼 왔으며, 개성공단 사업의 성공을 위한 국가적 지원이 보장되어 왔다.

2010년에는 북한의 무력 대남도발(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도 있었다. 우리 정부는 당시 5.24 조치를 통해 다른 협력사업을 제한하면서도, 유독 개성공단 사업만큼은 다른 사업들과 달리 취급해 왔다. 개성공단 사업의 경우 현지 체류인원 제한, 신규투자 제한 등 일부 제약은 있었지만, 이미 투자된 부분에 대한 통상적인 사업활동은 여전히 보장되었다.

2013년에 북한의 핵실험이 있었고,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도 있었다. 북한은 개성공단 남측 주재원들의 출입을 제한하며 먼저 주도적으로 사업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하거나 축소하기는커녕 북한과 협상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2013년 8월 14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정상화 합의서)를 체결하여 개성공단의 정상가동을 보장했다. 정상화 합의서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 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인 운영을 보장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간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입장에서는 ‘우리 정부가 먼저 개성공단을 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이번 사건에서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문제 삼은 것도 이 부분이다.

그런데 헌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유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2013년에 정상화 합의서를 믿고 개성공단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하더라도 이는 ‘원칙적으로 사적 위험부담의 범위’에 속한다”라는 취지의 부분이다.

개성공단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한 정부의 과거 노력은 신뢰할 것이 못 되고, 불안정한 남북관계를 포함한 사업의 위험은 각자 알아서 부담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대북정책이 지향하던 바가 이것이었나. 이 부분에 대해 정부와 개성공단 기업들 사이에 명확한 공감대가 있었나. 헌법재판소는 이를 옳게 본 것인가.

앞으로의 공론과 비평을 기대하며

이번 결정의 큰 취지는 ‘국가안보의 위기상황에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한 조치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깝지만 적어도 큰 틀에서 그 취지만 본다면 전혀 수긍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헌재 결정문에 기재된 구체적인 결정의 내용에 있어서는 본문에 열거한 것 외에도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는다. 헌법재판관들은 이 결정을 하려고 개성공단 기업인들을 2089일 기다리게 했나.

이번 헌재 결정으로 남북경협은 부관참시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헌재가 대북사업만의 특수한 문제까지도 “사적 위험 부담의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했으므로, 앞으로 정부 주도의 남북경협은 설 자리를 잃게 될 위험에 처했다.

개성에 못 가본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송악산 능선이 눈에 선하다. 북측 근로자들의 반가운 인사도, 나중에야 맛을 알게 된 평양냉면도 그립기는 마찬가지다. 돌아오는 2월 10일은 개성공단이 중단된 지 6년째 되는 날이다. 이번 헌재 결정에 관한 건설적인 공론과 비평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필자가 2022년 2월 1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같은 제목의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권태준 변호사는 개성공단 주재원 출신으로 현재 국회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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