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04-25 21:19 (목)
한국영화 100년, 첫 남북평화영화제[이안의 영화이야기]
한국영화 100년, 첫 남북평화영화제[이안의 영화이야기]
  • 이안 객원기자
  • 승인 2019.08.23 1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도로 보자면 대륙에 이어져 있는 반도지만 현실로 보자면 우리는 섬에 살고 있다. 육로로 갈 수 있는 다른 나라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바로 국토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이 북으로의 이동을 막아 대륙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분단, 分 나눌 분, 斷 끊을 단, 동강이 나게 끊어 가름. 사전에 나오는 분단의 뜻이다. 원래 하나였던 것을 일부러 끊은 것이 분단인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다툼이나 불화, 전쟁 같은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분단을 찾으면 바로 분단국가, 남북분단이 연관검색어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남북의 영화산업도 그러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한반도에 영화가 처음 소개된 것은 일제강점기 전, 대한제국 시대다. 스크린에 세계 방방곡곡의 풍광과 사람살이 그리고 상상을 비추는 영화는 빠르게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예술에서 오락까지, 정치에서 산업까지 영화의 스펙트럼은 넓게 펼쳐져 있다. 
수많은 극장과 다양한 영화제들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소통해 왔다. 분단 이후로 오직 북한의 영화만 빼고.

북한 영화만 금지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북한 관련 TV 프로그램에서 단편적으로 제시되는 체제선전 영화의 몇 장면만 볼 수 있었다. 또 반공영화 속의 무자비한 간첩이나 공작원 말고는 북한과 연계된 어떤 것도 스크린에서 볼 수 없도록 철저히 통제된 시대를 살아왔다. 

예를 보자. 2005년 재일 한국인 감독 최양일의 <피와 뼈>가 2005년 개봉될 때 일이다. 

영화 속에 사상문제로 감옥에 갔다 온 인물이 북송선을 타기 위해 기차역에서 친지들과 이별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배웅 나온 사람들이 북한의 인공기를 흔들고 북한 국가를 부르다가 마지막에 김일성 장군 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담겨있는 장면은 결국 삭제된 채 심의를 통과한다. 감독이 항의한다. 

그러자 재수입 추천 심의에서 한 차례 수입 추천 불가 결정이 내려진다. 또다시 재심의를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원본대로 개봉된다. 실제로 있었던 ‘사실적 장면’조차 문제가 되는 시대를 산 것이다. 분단은 군사분계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와 경험조차 철저히 갈라놓는 금단의 장벽이었다.

 

 

영화제 개막작-북한영화 <새>

한국영화 100주년인 올해, 여러 행사가 이런 영화의 역사를 기념하고 전망을 그리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행사는 올해 처음으로 열리는 평창남북평화영화제다. 

이 영화제는 2019년 8월 16일(금)~8월 20일(화) 닷새 동안 열린다.  평화 · 공존 · 번영을 주제로 한 다양한 영화를 선보이기 위한 자리다.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남북관계에 평화와 상생을 위한 다리를 놓았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그 감동을 계속 잇기 위해 만들어진 평창남북영화제의 상영작은 총 33개국 85편이다. 장편 51편, 단편 34편, 그 상영작 가운데는 북한영화도 있다. 더구나 개막작이 북한영화다. 

개막작으로 림창범 감독의 1992년 작 <새>가 상영되는 것은 놀랍고 특별한 사건이다. 일본이 제작비 1억 원을 투자하고 북한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참여해 만든 <새>. 이 영화는 당시 제5회 동경국제영화제 ‘아시아 수작 영화주간’에 상영됐다. 북한의 작가 림종상이 1990년 『조선문학』 3월 호에 발표한 소설 「쇠찌르러기」가 원작이다. 소설 「쇠찌르러기」는 조류학자 원홍구, 원병오 박사 부자의 실화가 바탕이 됐다. 주제는 가족과 인간애다. 

전쟁에서 큰아들을 잃고 손자들과 함께 살고 있는 북한의 원로 조류학자 윤 박사는 이산가족이다. 어려서부터 새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둘째 아들 명오가 어느 날 쇠찌르레기를 관찰하러 남한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채 한국전쟁이 터진다. 서로 생사를 알지 못한 채 분단이 굳어진다.

남한에서 유명한 조류학자가 된 아들 윤명오는 따오기를 연구하던 중에, 남한에서 사라진 따오기가 북한에는 있으리라 생각하고 새의 발목에 표식을 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낸다. 이에 대한 추적연구를 위해 일본학자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편 아버지 윤 박사가 쇠찌르레기를 관찰하다가 새의 발목에 달린 인식표를 보고 그것이 남한에 있는 자신의 아들이 달아 준 것임을 알게 된다. 이로 서로의 생사를 확인한다. 

이 영화는 사람은 갈 수 없지만 새는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현실을 통해 동서 화해 분위기와 냉전 해체, 그에 따른 남북한 관계의 변화 및 문화교류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아직 훼손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북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저어새 같은 희귀 조류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한 북한 영화와 특별한 만남

체제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통일영화로 분류되면서도 드물게 정치적 색채를 띠지 않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어머니 역으로 출연한 일제 강점기 시대 한국 영화 최고의 스타였던 문예봉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영화의 분단, 영화의 이산을 넘어서는 특별한 만남이다.

이 밖에도 평창남북평화영화제에서는 ‘평양시네마’ 섹션을 통해 다양한 북한 영화를 소개한다. 

민족분단으로 인한 재일 동포 2세들의 갈등을 그린 림창범, 고학림 감독의 <봄날의 눈석이>. 이 영화는 2003년 부산국제영화에 북한 영화특별전 상영 당시 일반 관객들은 제외한 게스트들만 관람할 수 있는 제한 상영 판정을 받은 작품이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자유롭게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무용 학원의 우수한 학생인 왕효남이 평양에서 조선 무용을 체험하며 조선 민족의 정신과 조선 무용의 넋을 느끼는 과정을 그린 시얼자티 아허푸, 김현철 감독의 <평양에서의 약속>도 상영된다.

이들 영화는 그동안 우리가 보도를 통해 접해온 폐쇄적인 국가, 프로파간다의 범람, 저개발의 기억, 군사적인 위협과 같은 전형적인 북한의 이미지와는 다른 북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동안 북한의 체제 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통일주제영화’와는 달리 정치적 색채를 띠지 않고 있다. 분단과 이산의 문제를 다룬 영화를 아무런 통제 없이 축제의 현장에서 본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남북관계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시대와 함께 변해온 남한 영화가 북한을 어떻게 재현해 왔는가를 짚어보는 기획전인 ‘분단 장르 영화에 대한 성찰’ 섹션에서는 국제정세와 남한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기존의 반공영화와는 다르게 한국 상업영화가 어떻게 대중적 관점에서 분단 상황을 그려왔는지를 모아서 소개한다. 

특별 상영작인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은 상영시간이  154분이지만, 1980년 개봉 당시에는 검열에 의해 50여 분이 넘게 잘려나간 100분 버전으로 상영됐다. 1987년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때는 심지어 여기서 10분이 더 잘린 90분 버전이었다. 2003년이 되어서야 전주영화제와 서울아트시네마 등을 통해 오리지널 버전이 상영되면서 걸작으로 재평가됐다. 

<피막>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했고, <물레야 물레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본선에 한국 최초로 진출하며 80년대 한국영화를 이끈 이두용 감독. 그가 하명중, 최불암, 정윤희, 한혜숙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출연시켜 만든 작품조차 검열로 만신창이가 되어야 했던 것이 한국영화의 현실이었다. 

이 밖에 1999년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시대를 열며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모델이 된 <쉬리>. 이 영화는 이전의 반공 영화들과 다르게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을 장르적으로 영화화하면서 이후 액션, 멜로, 스릴러, 코미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한국전쟁이나 분단 상황이 상업영화에서 장르화되도록 한 최초의 영화로 평가된다.

 

영화 통해 ‘평화라는 희망의 미래’ 제시

<쉬리>이후 20년 동안 분단 장르로 상업영화의 흥행을 이끈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 <의형제> <공작> 등 여섯 편의 영화를 통해, 남한 영화가 상업적으로 어떻게 북한을 상상하고 재현해 왔는지, 대중은 이런 영화에 왜 그렇게 열광했는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문성근 평창남북평화영화제 이사장이 “민족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는데 영화만큼 강력한 매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남북관계가 우여곡절이 많은 상황이지만,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창남북영화제는 ‘선을 넘어 하나로, 힘을 모아 평화로’라는 슬로건을 통해 막연한 구호나 상상이 아니라 남북이라는 분단의 현실과 평화라는 희망의 미래를 영화를 통해 제시한다. 

그러나 지난해 남북화해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던 당시 기획했던 ‘금강산 폐막식 개최’ ‘북한 영화인 초청’ ‘북한 로케이션으로 남한영화 제작’ 등의 계획은 올해 초 하노이 북미회담 이후 무산되었다.

분단 상황은 여전히 국제정세와 정치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움직이는 것이 현실이다. 같은 영화를 보는 것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공유하는 경험이 많을수록 흔들리는 현실은 보다 굳고 단단하게 안정될 것이다. 

한국영화 100년, 영화를 통해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기 기원해 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24길 27-17 (우리함께빌딩) 3층
  • 대표전화 : 070-7571-5633
  • 팩스 : 02-6455-5615 l email:snkorea615@gmail.com ㅣ후원계좌: 농협은행 312-2234-5633-61 백찬홍

  • 법인명 : 남북경협뉴스
  • 제호 : 남북경협뉴스
  • 등록번호 : 서울 아54067
  • 등록일 : 2018-07-26
  • 발행일 : 2019-01-20
  • 발행인 : 백찬홍
  • 편집인 : 백찬홍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홍
  • 남북경협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남북경협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nkorea615@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