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얘기 말고 사업만”하라고?
“정치 얘기 말고 사업만”하라고?
  • 신준영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사무국장
  • 승인 2019.08.23 16: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준영의 ‘북한 비지니스 에티켓’ #2

필자는 기업인들을 존경한다. 어떻게 그렇게 전 재산을 걸고 승부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놀랍고 그 결과 엄청난 돈을 버는 능력도 존경스럽다. 아울러 승부의 결과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음에도 결단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말을 잇기 어렵다. 필자는 취재 기자로, 또 남북사회문화 교류협력 사업자로 활동하며 20여 년째 남북을 오가고 있다. 남북은 사상과 체제가 다르니 문명과 사람이 다르다. 비록 경제에는 문외한이지만 그간 남북을 오가며 얻은 정보와 경험을 북한 비즈니스에 나서는 기업인들이 갖춰야할 ‘에티켓’으로 정리해 보려 한다.

존경하는 기업인들의 결단력으로 남북경제가 함께 도약하는 그날을 염원하며.                    

우리 기업인들이 방북하기 전 의무적으로 받는 ‘방북교육’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 “정치 얘기 하지 말고 사업만!” 하라는 당부다. 

쓸데없이 북측 체제 관련 얘기를 하면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무시무시한’피해 사례들도 함께 소개된다. 금강산관광 초반, 한 방문자가 북한 지도자 관련 조형물에 손가락질 했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다. 단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게 뭐냐”고 물었을 뿐인데 큰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북한사람들이 왜 화가 났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좌우지간 일체의 정치적 언행을 안 하면 만사형통으로 사업이 잘되는 것일까?

아니다. ‘정치적 언행을 안해서’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초반, 한 기업인은 북측에 ‘초청장 안 보내줘서 일이 안 된다’고 독촉하는 팩스를 보냈다가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팩스를 보낸 날이 태양절(4월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이었는데 “명절에 축하인사도 없이 안 좋은 소리만 보내는가”라는 얘기였다. 

성공적인 남북경협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화나게 하는 말이나 행동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왜 화가 나는지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북한체제가 형성된 역사적 과정을 좀 알아야 한다. 조금 장황하고 복잡하지만 한 번만 요점 정리를 해두면 ‘정치 얘기’ 관련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일러스트: 주태호
일러스트: 주태호

 

소련·동구권과 다른 북한의 ‘수령제 사회주의’

북한은 사회주의체제지만 소련·동구와는 또 다르다. 6.25전쟁 후 김일성은 ‘형태는 조선사람인데 머리는 소련이나 중국에 가있는 사람’들을 사대주의· 교조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조선식 사회주의 건설’을 주장했다. 당시 북한 내 정치세력 중 ‘소련파’‘연안파’를 겨냥한 비판이었다. 

1956년 소련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스탈린을 정면으로 비판하자 이에 고무된 ‘연안파’와 ‘소련파’가 연대하여 김일성 개인숭배, 중공업 우선정책 등을 명분으로 김일성 실각을 노리는 정치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연안파·소련파는 당내 세력 열세로 주모자는 체포되어 처벌 받고 일부 인사들은 중국으로 망명했다. 

이 사건 후 김일성은 유일지도체제를 강화하고 김일성 중심의 항일빨치산투쟁이 당의 유일한 혁명전통임을 선언했다. 이에 적극적이지 않은 국내파 세력들도 제거되었다. 

1967년 김일성 항일빨치산투쟁 세력의 일부인 ‘갑산파’가 2인자 자리를 노리고 권력투쟁을 벌였으나 이들도 결국 북한 정치무대에서 퇴장당했다. 이로써 김일성 반대 세력은 모두 제거되었고 소련· 중국에 대해서도 자주노선을 표방했다.

1968년 ‘유일사상체계확립 10대 원칙’이 발표되어 수령은 ‘인민의 절대적 신임을 받은 당과 혁명의 영도자’로 규정되었다. 이전까지 ‘수상 동지’‘총비서 동지’로 불리던 김일성은 이때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로 불렸다. 1970년 제5차 노동당대회는 주체사상을 당의 지도이념으로 선포하여 김일성 유일영도체제를 확립했고, 1972년 개헌에서 주석직을 신설하여 김일성은 북한의 당·정·군을 한 손에 쥔 최고권력자가 되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사회주의 시스템 위에 다시 수령을 추대한 북한의 유일체계에 대해 외부 사람들은 바로 ‘일인 독재’를 떠올린다. 조선노동당은 왜 이런 노선을 채택한 것일까? 

북한 연구자들은 일제 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의 경험 때문이라고 본다. 김일성과 항일빨치산 세력들은 “엄혹한 일제 치하에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하지 못하는 조직은 사분오열되고 인민에 뿌리내리지도 못하고 항일도 해방도 이뤄내지 못했다”는 인식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50년째 계속되는 전 국민 토요학습

이후 북한 지도부들은 김일성의 후계자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했다.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도 소련이 레닌과 스탈린의 후계자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중국 문화혁명에서 홍위병들이 김일성을 ‘수정주의자’라고 비판하고, 강청 등 4인방이 유소기· 등소평 등 혁명 노간부들을 공격한 것도 모택동이 중국공산당의 후계 문제를 비원칙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소·중처·럼 후계자를 잘못 뽑으면 전임자를 배반하거나 심지어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고 보았다. 당시 김일성의 목 뒤 혹 때문에 건강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후계자로 예상되던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도 계속 병중이었다. 새로운 대안을 찾은 결과 1973년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되었다.  

73년 9월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조직비서 및 선전선동담당 비서에 취임한 후 사상과 조직 양측면에서 김정일 후계체제(유일지도체제)를 만드는 작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74년에는 ‘유일사상체계확립 10대원칙’을 공개적으로 제시했는데 제1항이 “전당과 온사회에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며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완수하기 위해 수령의 영도 밑에 당중앙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10대 원칙을 위반하면 반당· 반혁명행위로 처벌받게 됐다. 

다음으로 김정일은 당·정·군 조직 내의 후계체제(유일지도체제) 수립에 힘을 기울였다. 노동당 간부인사권을 당 조직지도부에 집중시켜 자신의 통제하에 인사가 진행되게 했고, 조직지도부가 모든 단위의 사업을 지도·검열할 수 있는 체계를 세웠다. 

인민군 내에도 당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인 총정치국을 설치하고, 정치위원의 인사권을 장악했다. 모든 군사문제를 정치위원과 군지휘관 양자의 합의로 결정하도록 하여, 군지휘관의 단독 지휘권 행사가 불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인민군은 후계자의 군대로 변화했다. 정무원을 비롯한 정부기관에서도 정무원 당위원회가 김일성의 교시와 당 정치국 결정 등에 기초하여 정책 집행을 지도했다. 

일반 대중들에 대한 학습도 일상화해서, 금요일에는 노동이나 군사학습, 토요일에는 당정책과 혁명역사 위주로 학습을 실시했다. 유일지도체제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처벌하기 위해 국가보위부도 신설되었다. 

뿐만 아니라 당 조직계통, 행정계통, 국가보위부 계통 등 3선 기관은 3일에 한 번씩 전국 상황을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보고해야 했고 비상 상황시는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했다. 중앙기관에서 사업을 추진할 때는 ‘제의서’를 김정일에게 제출하여 승인받아 집행하도록 했다. 김정일은 이처럼 당·정·군 조직체계를 재편한 후 직접 전국을 다니면서 확인 검열을 실시했다. 그 결과 북한의 모든 부분에 대한 당의 영도체계가 일사불란해졌다고 한다. 

80년 6차당대회에서 김정일은 후계자로 공식적으로 등장했는데 조직적 반대는 없었다. 60년대 후반부터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던 김일성 유일영도체제와 유일지도체제(김정일 후계체제)가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80년 6차당대회에서 ‘온 사회의 혁명화, 노동계급화’라는 60년대 의 구호 대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가 당의 전략적 구호로 제시되었다. 이로써 북한은 모든 것이 수령에게 집중되는 ‘수령제 정치체제로 운영되는 사회주의 국가’로 탈바꿈했다.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 배경에는 60년대 이후 80년 무렵까지 북한 경제가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던 상황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가장 친절한 북한 사람도 화내는 대목

흔히들 ‘북한이라고 내부에 비판세력이 없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위에서 본 것처럼 북한 내의 조직적 비판세력은 60~80년대에 이미 정리되었고, 전 국민은 50년 이상 유일사상체계를 교육 받고 내면화해왔다. 2003년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했던 북한 여성응원단들이 길에 내걸린 환영 현수막 속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이 비에 젖는다며 울부짖었는데, 이 모습을 보며 남측에서는 큰 충격을 받았다. 북에서 지도자는 우리 시각으로 보면 종교적 경건함의 대상이다. 

대화 중 지도자를 모욕하면 가장 친절한 북한사람도 맹렬하게 분노한다. ‘유일사상체계 10대 원칙’에 의하면 누군가 수령의 권위를 훼손하면 바로 반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당·반혁명행위로 간주되는 것이다. 해외에 나온 북한 인사들이 특히 한국 언론들을 피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싸우지 않으려니 피하는 것이다. 종종 북측경제인들이 사업협의 때 자신의 입장을 ‘결사관철’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에게 업무는 단순 비즈니스가 아니라 당과 수령 앞에 책임져야할 ‘과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내부 사정을 북측 상대는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정치 얘기 알고 경협을”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은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한 것처럼 북한 사회주의도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에 나설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체제전환이 이뤄질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의 인식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소련·동구권 붕괴 후에도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 바로 수령제 사회주의 덕분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소련·동구권 붕괴가 인민과 당의 관계가 적대적 모순으로 전환되어 둘 사이에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북한은 수령·당·인민의 관계를 혈연적으로 강화한 국가체제를 만들었고, 나아가 국가자체가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논리를 구축했다.

'뇌 없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듯이 수령 없는 국가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는 2023년이면 북한은 소련(74년)보다 더 오래 유지된 세계 최고의 사회주의 국가가 된다. 수령제 사회주의의 효용에 대한 북한의 믿음은 갈수록 강화되는 상황이다. 사실 북한 체제가 50년 후, 100년 후에 어떻게 될 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문제는 우리가 내년이나 내후년에 그들을 만나러 가려고 신발끈을 조이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북한의 수령제 사회주의 체제가 좋다거나 싫다거나가 아니고 우리의 사업 상대방이 그 같은 틀 내에서 움직이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정치 얘기 말고 사업만”전략으로는 내 사업이 탄탄대로로 갈 수 없다. 북한의 명절에 '축하합니다'라는 의례적 인사말 한마디 없이 의향서를 보냈다가 나의 파트너가 상관에게 지적받고 인사고과가 깎인다면 내 사업은 어찌될 것인지? 성공적인 남북경협을 위해서는 우선 북한 체제의 운영원리를 파악해야 한다. 지난 70년대 중동 진출을 위해 한국 기업인들이 이슬람 문명을 열심히 공부했듯이 지금은 북한의 ‘수령제 사회주의’를 열공해야 할 때다.

 

 오늘의 교훈.
- “정치 얘기 말고 경협만”(50점)
- “정치 얘기 알고 경협을”(100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