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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NGO, 북한 핵개발 관심 없어"[KDI 헤이젤 스미스 교수 대담]
"국제 NGO, 북한 핵개발 관심 없어"[KDI 헤이젤 스미스 교수 대담]
  • 홍석근 기자
  • 승인 2023.09.03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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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국제 식량원조가 북한에 처음 제공된 이래 대북 인도지원은 끝없는 검증과 논란의 대상이었다. 식량원조가 권력층과 군부로 전용되는 것은 아닌지, 원조가 취약계층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북한 정권은 도움을 받으면서도 왜 계속 도발을 하는지 등의 논란이다. 

이와 관련해 [KDI 북한경제리뷰] 8월호는 대북 인도지원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헤이젤 스미스 교수(영국 런던대학교, SOAS)와의 대담 내용을 정리해 실었다. 대담은 6월말 진행됐고 사회는 이석 KDI 선임연구위원이 담당했다. 본지에서는 대담 내용을 다시 요약해 제공한다.

1998년 정주영 회장 북한 소떼 방문.
1998년 정주영 회장 북한 소떼 방문.

❚국제 대북 인도지원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그 전에 인도지원이 뭔지 살펴봐야 한다. 인도지원은 생명을 구하는 목적의 긴급원조(emergency aid)이다. 따라서 인도지원에는 조건이 부과되지 않는 반면 개발원조에는 경제적, 정치적 조건이 부과된다. 

❚이를 바탕으로 대북 인도지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은 지금까지 거의 모두 인도지원이었다 북한은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개발원조를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인도, 중국, 다른 저개발국들과 다른 점이다. 

인도지원이 단기적으로 북한주민의 생명을 구했는가? 북한이 기근에서 벗어날 무렵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에 특히 국제 인도지원이 실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는 증거가 많다. 그렇지만 최근의 상황은 당시와 많이 다르다. 북한 전역에 긴급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했다는 정보가 있고 2023년 들어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의 신뢰도 높고 반박하기 힘든 보고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지원은 2021년 이래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국제 대북 인도지원 역사에서 가장 최근의 시발점은 1995년이다. 당시 전국적 대홍수라는 유례없는 자연재해를 이유로 북한이 유엔에 지원을 호소하자 유엔재난평가조정단(UNDAC) 대표단이 북한에 처음 방문했다. 이때부터 대북 식량지원을 위한 대규모 국제 지원이 시작되었다. 대북 식량원조에 가장 먼저 나선 국가 중 하나는 일본이었다. 일본정부는 1995/1996년에 무려 50만톤의 식량원조를 북한에 보냈는데, 이는 400만명이 1년 동안 먹을 양이었다. 그 외 미국 등 과거의 적국도 유엔이 대북 원조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1998년에 많은 원조를 보냈으며, 1999년 미국은 국제사회 에서 대북원조를 가장 많이 보낸 국가로 기록되었다.

헤이젤 스미스 런던대학교(SOAS) 교수

❚지난 25년간의 대북 인도지원은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 규모인가?

국제 대북 인도지원이 진행된 시기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이며, 절정기는 1998년에서 2001년까지이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유엔 기구가 약 8억달러의 대북 인도지원을 제공한 데 비해, NGO(적십자사 포함) 지원은 약 1억1,000만달러에 그쳤다. 스위스 등과 EU는 유엔 기구 출연금 외에 별도로 약 1억달러 규모의 인도지원을 제공했다. 이를 모두 합하면 북한은 1998년에서 2004년까지 최소 10억 달러, 현재 물가로 약 17억달러 규모의 인도지원을 받았다. 2001년 이후 점차 감소하여, 연간 합계액이 2005~06년경 약 5,000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2021년 및 2022년에는 인도지원이 거의 실종되어, 합계액이 각각 약 1,400만달러, 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대북지원은 아시아 또는 아프리카의 다른 저개발국에 대한 원조와 어떤 차이가 있나?

북한에 원조가 제공된 것은 북한이 저개발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북한에 긴급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오늘날 인도지원 사업을 비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인도주의적 긴급사태가 각기 다르고, 지속기간, 구제방법 및 결과가 모두 다르며, 일차적 원인도 전쟁 및 충돌, 국정 실패, 지진 피해, 급작스러운 가뭄, 홍수 또는 이 모든 요인의 동시다발적 발생 등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대북 인도지원은 긴 역사가 있다. 시기 구분이 가능한가? 

기근 직후 시기 이후 원조 규모가 급격히 감소한 점이 주요한 변화이다. 그동안 개선된 부분은 데이터 수집 및 체계화의 품질이다. 대단히 포괄적인 전국사회조사 자료가 2014년 자료부터 온라인으로 제공된다. 지역 간 격차를 수치화한 2017 다중지표 집단조사(Multiple Indicator Cluster Surveys)에서 파생된 다수의 2019년도 발간 보고서도 온라인으로 제공된다. 이 모든 자료가 UNOCHA, FAO, UNICEF 등 유엔 기구 웹사이트를 통해 제공되고 있지만, 세계 어디에서든 이 자료를 사용하는 학자와 평론가는 지극히 드물다.

1990년대와 달리 오늘날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 훨씬 많다. 실제로 북한에 가지 않아도 아동을 비롯한 취약계층이 기아에 시달릴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알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북한 아동은 국제 인도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가시성 부족에 기인한다. 유엔안보리는 가장 최근의 제재가 북한 식량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정부도 북한에 기아가 또 발생했다고 인정함으로써 북한경제가 처참히 실패했다고 광고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또 한편으로는, 최소 세계적으로 영향력있는 미디어의 표현에 따르면, 기아가 세계 모든 곳에 발생하면서 기아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전반적으로 줄어든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대북지원의 주요 매개자는 누구이며, 이들의 동기와 목표 및 특징은 무엇인가?

북한의 인도지원 분야는 기본적으로는 공여자와 사업시행자로 구분할 수 있다. 조직구성 원리에 따라 다자기구, 양자 기구, 비정부기구로 분류할 수도 있다. 다자 인도주의 기구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촘촘히 활동하는 조직은 유엔 기구이다. 아동과 여성을 중심으로 보건 및 영양 사업을 시행하는 UNICEF, 긴급사태로 인해 난민과 실향민이 발생하면 유엔난민기구(UNHCR)가 주요 행위자가 된다. 북한 내에서 활동하는 주요 인도주의 기구는 UNICEF와 WFP가 있였다. 그 외 북한에서 활동하는 기구로는 FAO와 WHO가 중요하다. WHO는 백신접종 및 말라리아, 결핵, HIV/AIDS 퇴치를 중심으로 북한 보건사업 기금 마련을 위해 북한정부와 협력한다. 

❚대북지원의 시행 및 평가는 주로 어떤 절차로 이루어지나? 

대부분의 인도주의 기구는 고도로 구조화되고 표준화된 조사, 모니터링 및 평가 절차를 따른다. 주요 원조제공기관, 즉 유엔 기구의 경우 모든 지원 활동이 이러한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이에 따라 수천 건의 대북지원 사업 분석 및 평가 보고서가 WFP, FAO, UNICEF 등 유엔 기구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고,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보고서를 UNOCHA 릴리프웹(ReliefWeb)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국제기구와 단체가 논의 및 활동을 함께 할 공동의 기반이 존재하나? 

인도지원은 조직화 측면에서 오랫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유엔 외 기관을 비롯하여 북한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인도주의 기구를 유엔이 조정한다. 북한 밖에서는 유엔 기구, NGO 등 인도주의 기구들이 인도지원 기관 간 상임위원회(IASC)를 통해 인도지원 정책을 수립한다. 인도주의 사업의 시행, 모니터링 및 평가에 관한 세부 규칙이 토론 및 개선을 거쳐 수많은 실무 규약과 지침서에 기술되며, 이는 다시 IASC가 관리하는 장기적 기제를 통해 꾸준히 업데이트된다. 유엔 인도지원조정실(OCHA)은 운영 및 정보 측면에서 유엔 및 양자 기구, NGO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남북한은 매우 특수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북한에 인도지원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그동안 상당히 많았다. 남한의 대북 인도지원과 국제사회의 인도지원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나?

한국의 인도지원과 다른 나라 인도지원의 공통점부터 살펴보자. 우선, 전반적인 대북 인도지원 패턴은 정부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1995년에서 2009년까지 한국의 대북지원을 지원 주체별로 살펴보면, 정부가 75%, NGO 및 교회 등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둘째, 한국의 대북지원은 시행 기간이 매우 짧았다. 1995년의 대규모 정부 원조를 제외하면, 한국의 대북지원은 대부분 2000년에서 2008년 사이에 진행되었다. 이후 2021년까지 지극히 적은 양의 지원이 이어졌으며, 2022년 및 2023년 현재까지는 유엔 시스템에 기록된 것이 전무하다. 다시 말해, 한국의 대북 인도지원은 일종의 단기적 현상이었다.

차이점은 첫째, 인도지원이 정치 쟁점화하면서 인도지원 패턴에 북한주민의 인도적 수요 변화가 아닌 정치적 우선순위 변화가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에 대한 한국인 특유의 시각이 있다. 민족적 시각에서 한국정부의 대북지원 대부분(1995~2009년 전체의 약 83%)은 양자 지원으로 거의 조건 없이 제공되었다. 이는 분배의 투명성 및 책임성을 매우 강조하는 다자 원조기구를 통한 지원을 선호하는 다른 주요 공여국과 크게 다른 부분이다. 셋째, 대북 인도지원 사업 추진 및 시행에서 NGO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5년에서 2009년까지 한국정부는 1,100억원에 약간 못 미치는 금액을 대북 NGO 사업에 지원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민간부문에서 모집한 대북 NGO 사업 후원액은 무려 8,180억원으로, 정부 지원을 압도했다. 그렇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북한주민과의 개인적 연고의 감소가 대북 인도지원을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한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실제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양질의 정보 부족으로, 심리적 및 정서적으로 북한주민을 멀게 느끼면서, 이들의 인도주의적 수요에 무관심해진 것도 주요 걸림돌인 것 같다.

❚핵개발을 비롯한 북한의 공격적 행위가 국제원조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나?

인도지원이란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임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취약계층, 특히 아동에게는 인도지원이 꼭 필요하다. 정부가 그들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행위를 이유로 고통받는 취약계층에게 인도지원 제공을 거부하는 것은 국제법에 위배된다. 

❚국제기구 및 단체는 북한의 행동을 어떻게 보는가?

한마디로 말해, 인도주의 기구의 근본적 존재 이유인, 생명을 구하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재 북한주민에 대한 원조가 시급하다는 것이 국제 인도주의 기구가 포괄적으로 공유하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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