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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만 교수 추모 10주기 학술대회 '북한연구의 마음'
서동만 교수 추모 10주기 학술대회 '북한연구의 마음'
  • 전구주 기자
  • 승인 2019.07.04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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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연구의 선구자적 업적을 남긴 서동만 교수 10주기 추모 학술대 회가 지난 5월 3일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서동만 교수의 대학원 지도 교수였던 와다 하루키 교수가 발표자로 참석했다.

행사를 주최한 북한대학원대학교 SSK남북한마음통합연구단 관계자 외에도 가족과 지인, 와다 하루키 교수의 제자인 조성우 6.15공동선 언실천 남측위원장 그리고 북한 관련 학자들이 참석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추모사에서 “서동만 교수의 학문적 열정이 담긴 엄청난 자료가 1995년 귀국길에 공항에서 압수됐다.

북한 연구의 결정적인 연구 자료였기에 이를 되찾기 위해 많은 분들이 노력해 서동만 교수의 공이 깃든 자료를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특수 자료실’로 옮길 수 있었다.

그 자료가 있었기에 나도 논문을 쓸 수 있었다. 지금도 곁에 있어 조언을 해주었으면 한다”며 서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평가했다.

지도교수 와다 하루키 교수 직접 참석, 연구 과정과 학문적 성과 기려

이우영 SSK남북한마음통합연구단 장은 “연구자가 가장 먼저 찾는 북한 연구 입문서가 서동만 교수의 책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10년이 지나도 서 교수의 학문적 업적, 실천적 노력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며 “통일운동에 헌신하였던 서 교수의 꿈과 바람이 10 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진전되었는 지 아쉬움이 남는다”고 회고했다.

서동만 교수는 ‘1950년대 북한’을 재해석한 선구자적 학문적 업적을 남기고, 북한을 바라보는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 기조실장을 맡아 국정원 개혁을 추진하고 이후 상지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9년 6월 4일 5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가 사회를 맡아 진행된 서동만 교수 추모 ‘북한 연구의 마음’ 학술대회에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최완규 신한대 학교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장, 백학순 세종연구소장, 최대석 이화여대 부총장,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김갑식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 안경모 국방 대학교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고령에도 제자를 추모하는 학술대회에 직접 참석한 와다 하루키 교수는 미리 준비해 온 주제발표문을 통해 서 교수의 학문적 성과 발표했다.

다음은 와다 하루키 교수가 발표한 ‘초기 북조선사 연구에 있어 서동만 연구의 의의’ 요약문이다.

 


요약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초기 북한사 연구에 있어서의 서동만 연구의 의의

서동만은 1970년대 중반 서울대에 입학했다. 그는 학생 운동을 하다 구속되고 퇴학 후 1980년대 초 복학했다.

나는 러시아‧소련사를 전공하다가 1981년부터 초기 북한사 연구를 시작했다.

나는 70년대부터 한국 민주화 운동을 지지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와 관계가 좋지 않아 유학생들은 나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1983년 일본에 온 조성우가 대학원 연구생으로 나의 지도를 받는 연구생이 되었고 조성우를 따라 그는 내 밑에 서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런 의미에서 서동만은 나의 한국인 유학생 1호였다. 이때부터 서동만은 나 (와다 하루키)의 지도하에 북한 현대사 연구를 시작했다. 1989년에는 박사과정에 진학, 논문을 준비했다.

나는 그를 위해 북한사 세미나를 개설했다. 당시 나도 북한사 연구를 막 시작한 무렵이라, 나와 서동만은 공동으로 북한사 연구를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시기는 세계적으로 북한 역사 연구의 요람기였다.

서동만은 나의 가설을 받아들여 북한 체제의 토대를 이루는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성립을 확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나의 세미나에 참가한 이후, 소련사 연구 업적을 심도 있게 공부했다.

토론을 거치면서 정교해진 방법론을 도입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논문을 완성했다. 그는 결국 6년 노력 끝에 1995년 박사논문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성립 1945-1961’을 완성했다.

이는 놀랄 만한 것이었다. 그는 소련 점령군 문서를 볼 수 없었다. 다만 제한된 북한문서와 로동신문만을 정독했을 뿐, 특별히 새로운 자료를 활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논문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선행 연구 성과를 흡수한 후, 검증된 방법론에 입각해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업적이었다.

북한사 연구의 토대를 마련한 고전적인 업적으로서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서동만은 논문에서 북한의 국가사회주의 체제는 소련과 중국의 체제보다 훨씬 집권적이며 군사적 체제를 짙게 띠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995년 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이 논문은 제출 직후부터 한국의 북한 연구가에게 널리 알려졌고, 초기 북한사에 대한 한국 최초의 학문적 연구로 인정받았다. 또 이 논문은 내 가설의 기본 부분에 대한 확증을 제공해 ‘유격대 국가론’ 전개를 가능케 했다. 1988년 나는 경남대 심포지엄에서 “북한이 ‘유격대 국가’에서 ‘정규군 국가’로 전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연구가들은 반신반의 했지만 서동만이 당시 유일하게 내 생각에 동의한 토론자였다. 우리의 견해는 일치했지만 이제 토론을 하고 싶어도 서동만은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서동만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흘렀고 그의 논문이 나온 지는 24년이 됐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고전적 가치를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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