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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유동호 대표
내가 본 유동호 대표
  • 정숙경 사단법인 남북경제협력협회 운영지원실장
  • 승인 2019.07.04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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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호 대표(오른쪽, 남북경제협력협회 제공)

내가 유동호 대표님을 처음 만나게 된 건 2007년 ‘지 금우리가다음우리’ 입사 면접장에서였다.

통일에는 1도 관심없이 살아왔던 지난 시간 동안 남북한이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느꼈고, 수만 명의 청년학생들을 앞세워 그 길을 개척 했다는 신선함까지 더해졌다.

그런 대단한 분을 만나고 있다는 설레임과 남북경협 이라는 생소한 일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우다우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다. 게다가 사무실은 한 번도 상상 해보지 못한 한옥에 꾸며져 특색 있고 정감이 가득한 곳이었다.

큰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앞마당엔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뛰어노는, 그림 같은 첫 인상에 감탄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이 일을 놓지 못하는 데에는 그날 받은 첫 인상이 컸기 때문인 듯하다.

굽히지 않는 협상가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위축된 상황에서 회사는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한때 100여 명이었던 직원들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퇴사하지 않고 밀린 급여를 탓하지 않았다.

북한을 방문하고 북측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려운 협상장에서도 굽히지 않고 뚝심 있게 사업을 만들어가는 과정들을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지켜봤다. 그런 모습을 보며 유 대표님은 대단한 협상가라는 생각을 했다.

5.24조치로 전 재산을 바친 사업장을 가 보지도 못한 채 한 푼의 보상도 없이 지금까지 버텨 온 최근의 상황을 놓고, 그분이 비즈니스마인드가 없다거나 방만한 경영 탓이라 책망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아마도 5.24조치로 남북관계가 단절되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그런 말은 듣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한다.

내가 경험한 유 대표님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얄팍 한 수를 쓰지 않았다. 벽에 부딪혔을 때면 언제나 돌 파구를 찾아 나섰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셨다. 최초의 금강산 육로관광을 시도할 때도 그랬고, 금강산 통일 수련원 건립사업이 현대아산의 경영방침 변화로 좌절을 겪었을 때도, 평양으로 개성으로 또 따른 비즈니스를 개척해 나갔다.

대부분 최초의 시도였고 그때마다 남과 북 양측으로부터 반대에 부딪치는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여 끝끝내 성사시켰다.

통일부 앞 농성을 결심하다

5.24조치로 모든 남북교류가 차단되자 국내사업으로 ‘아리단’이라는 이름의 떡집을 개업했다. 양질의 재료를 사용하여 ‘당일 생산 당일 판매’만을 고집했다. 이런 경영철학은 입소문을 타고 금새 퍼져나가 아리 단 앞은 연일 사람들로 붐볐고 주문이 쇄도했다.

그 무렵 개성공단이 잠시 중단되는 사태를 맞이했다. 중단된 지 5년이 지난 금강산 관광과 5.24조치 관련 남북경협기업은 외면한 채 개성공단 지원에만 급급해하는 정부를 보며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를 발족하고, 정부에 남북경협 재개와 남북경협기업인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지원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나 또한 그때부터 생소한 투쟁의 현장을 함께 했다. 유동호 대표는 200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8시에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했다. 20주의 캠페인과 60여 차례의 기자회견과 7차례의 대규모 행사를 치러냈다.

매일 밤 철야농성

새벽에는 떡집을 운영하고 저녁에는 기업인들을 만나 동참해줄 것을 설득하고 어려운 기업인들을 보면 가지고 있는 돈을 손에 쥐어주며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고 독려하셨다.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면서도 급여도 받지 못하는 직 원들의 불만은 쌓여갔고 때마침 투자자의 투자금 회수 요청으로 잘 나가던 떡집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 었다. 또다시 위기가 온 것이다. 결국 시간 싸움이었 다. 정당한 보상을 요구해도 응답 없는 정부를 향해 더 강도 높고 거친 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듯 청사앞 농성을 결심하셨다.

농성 또한 허투루 하지 않으셨다. 모든 업무를 농성 장에서 처리하고 매일 밤 철야농성을 자처하셨다. 날 이 갈수록 열악한 농성장 환경과 이루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과중한 스트레스는 유 대표님의 몸을 서 서히 망가뜨렸다.

몸에 이상을 느꼈을텐데도 일을 마무리 짓겠다는 책임감이 앞섰던 것일까. 농성 260일 만에 문재인 정부 초대 조명균 통일부장관으로부터 피해지원의 약속을 받아 낸 뒤에야 비로소 병원을 찾으셨다. 이미 몸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암세포가 퍼진 후였다.

남북교류 중단 없이 이어갈 것

내게 유동호 대표님은 삶의 변화를 갖게 해주신 스승 이셨다. 명상과 수련하는 삶을 통해 바른 길을 제시 해주셨고 나와 남이 다르지 않고 우리는 하나임을 강조하시며 늘 남을 먼저 배려하는 이타적인 삶을 가르쳐주셨다. 그 수많은 질곡의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 유 대표님은 수행자의 삶을 살고자 하셨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정말 너무나 힘겹고 고단한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서로를 등불삼아 의지하고 버텨냈다. 이제 막 그 터널을 빠져나오려는 순간에 입구가 닫혀 버린 느낌이랄까? 마치 돌아가신 후 지금의 상황을 예측이나 하신 듯. 전화기 너머로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흐느끼시던 마지막 통화를 잊을 수가 없다. 십 년을 넘게 한솥밥을 먹는 우리는 식구라며 평생을 함께 하자던 임직원들과의 다짐을 뒤로한 채 대표님은 그렇게 떠나가셨다.

유 대표님의 소중한 피와 땀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그분의 희생과 동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그 뜻을 잘 이어받을 것이다.

유 대표님이 마지막까지 몸담고 계셨던 사단법인 남북경제협력협회를 통해 생전에 뜻을 함께했던 동지들이 다시 열릴 남북경협과 교류의 길을 중단 없이 이어 갈 것이다.

오랜 시간 잘 보이지 않는 곳일지라도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지켰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기억 해줘야 하지 않을까? 유동호 대표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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