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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영의 ‘북한 비지니스 에티켓’ 【1】 “장사라니요? 봉사입니다”
신준영의 ‘북한 비지니스 에티켓’ 【1】 “장사라니요? 봉사입니다”
  • 신준영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사무국장
  • 승인 2019.07.0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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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영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사무국장이 경협 예비기업인들을 위한 '북한 비지니스 에티켓'을 연재한다. 월간 '말' 잡지 기자 시절부터 남북문제에 천착해온 신준영 사무국장은 '민족21' 편집장을 거쳐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려 왕궁 만월대 공동발굴사업을 주관하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필자는 기업인들을 존경한다.
어떻게 그렇게 전 재산을 걸고 승부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놀랍고그 결과 엄청난 돈을 버는 능력도 존경스럽다.
아울러 승부의 결과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음에도 결단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말을 잇기 어렵다. 
필자는 취재기자로, 또 남북사회문화 교류협력 사업자로 활동하며 20여 년째 남북을 오가고 있다.
남북은 사상과 체제가 다르니 문명과 사람이 다르다. 비록 경제에는 문외한이지만 그간 남북을 오가며 얻은 정보와 경험을 북한 비즈니스에 나서는 기업인들이 갖춰야할 ‘에티켓’으로 정리해 보려 한다.

존경하는 기업인들의 결단력으로 남북경제가 함께 도약하는 그날을 염원하며.

2003년 평양 방문 때의 일이다.

당시는 북한이 해마다 개최하는 ‘4월의 봄’ 축제기간이었다.

필자 일행의 숙소였던 고려호텔 옆 식당가에서는 건물 앞뒤로 천막과 파라솔로 임시 매장까지 설치하여 각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을 상대로 성업 중이었다. 

오전 업무를 보고 조금 늦은 점심시간에 필자 일행은 당시 북에서 한창 양식붐이 일고 있던 메기탕집을 찾았다.

아침 무렵 지나가며 봤을 때는 어항에 메기가 가득 있었는데 겨우 세 마리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야, 우리 먹을 건 겨우 남았구나”하는 즐거운 탄식 속에 일행 중 한 사람이 메기탕집 20대 여성 접대원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장사 잘돼요?” 

고운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지만 여성 접대원의 대답은 똑부러졌다.

“장사라니요? 봉사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필자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남북의 차이를 단 한 문장으로 명확히 보여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문명의 충돌’이었다.

남북은 문명과 사람이 다르다. 사상과 체제가 다르니 문명과 사람이 다르다.

그들과 우리는 얼굴과 말이 같고, 5천년 역사를 공유한 한 민족이지만 현 시점에서는 다른 가치관과 감수성을 갖고 있다.

대체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비즈니스에서도 상충없이 협력할 수 있다. 

일러스트: 문성근
일러스트: 문성근

북은 개인보다 공동체가 우선인 사회주의 사회다.

그 사회에서 개인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은 ‘저급한’ 인성의 소유자로 평가되어 출세를 못한다.

당연히 메기탕집 처녀도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민에 대한 ‘봉사’로써 자기 직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 처녀의 일을 ‘이익’을 위한 ‘장사’라고 규정하면 그녀는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물론 처녀의 속마음은 다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삼성맨들의 ‘삼성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겉다르고 속다른 것일까? 그런 삼성맨도 있겠지만 극히 일부일 것이다.

물론 삼성맨들이 삼성을 떠나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여기에서는 일단 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하기로 하자.

삼성맨이 '삼성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겉다르고 속다른 것일까? 

남측의 우리는 개인 이익을 우선하는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는 사상이다.

인간들이란 개인으로 존재하며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가정한다.

자본주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이같은 개인의 자유, 생활의 자유가 필요하며, 욕망과 이익동기에 대한 지속적인 자극이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장사가 잘 되냐”라는 인사는 당연히 안부이자 축복이다.

결국 2000년 초 본격적으로 열린 남북경협의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셈이 된다.

당시 남북경협을 위해 방북한 남측 기업인들은 당혹스런 일을 많이 겪었다.

북측 파트너들이 남측 기업인들이 가져온 기기들을 “좀 달라”고 요구하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가져간 노트북이나 빔프로젝터 같은 것들을 주고 가라는 것이다.

남측 기업인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왜 남의 물건을 공짜로 달라고 해?” 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이것이 북측 인사들이 사회주의경제의 ‘공급’ 제도하에서 살아온 환경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처럼 돈을 주고 물건을 사본 적이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는 생산수단을 국가나 국영기관이 소유하면서 그를 기초로 국민들의 사회적 필요량을 생산·공급하고 국민복지를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체제이다.

북한 사람들은 분단 이후 이같은 체제하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사회주의경제에서는 ‘판매’가 아니라 ‘국가공급’이 주요한 자원의 분배방식이다.

하급기관은 상급기관에 ‘공급’을 요청한다. 북측 기업인들의 눈에는 남측에서 온 호방한 손님들이 힘있는 ‘상급기관’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물론 남쪽의 우리도 처음부터 ‘개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농민들은 개인이 아니라 철저히 공동체의 일원이었고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하라는 유교 규범이 개인의 자유에 앞섰다.

그런데 분단 이후 남쪽이 자본주의 -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되면서 대부분 농민의 자손들인 우리들도 공동체적 규범과 분리된 자본주의적 개인으로 변화해왔다. 

해방 직후 북한 주민들의 경우도 인구분포에서 남쪽보다는 노동자 수가 많기는 했지만 여전히 절대 다수가 농민이었다.

분단 이후 북한 사회에서는 남쪽과 달리 자본주의적 개인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적 인간형으로의 전 사회적 개조 과정이 진행되어왔다. 

‘돈주’가 아닌 북한 주류세력이 비지니스 대상  

요즘 북한의 시장경제화에 대한 소식이 많다.


90년대 중반 경제난으로 북한 정부가 주민들에게 식량 등 소비품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자 주민들은 ‘장마당’을 통해 생활을 해결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0년 북한 정부도 이른바 90년대 중반의 경제난 즉 ‘고난의 행군’의 종료를 선언하고 사회주의 경제관리체제에 대해 꾸준히 개선책을 발표해왔다.

인민생활에 대한 국가책임을 줄이고 기업과 농장이 시장과 무역을 통해 인민 소비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는 조치들이었다.

이른바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로서 사회주의적 소유관계는 유지하면서 기업의 경영자율성을 높이고 근로자의 노동의 양과 질에 따라 분배하여 기업의 생산성과 근로자의 생활수준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즉 현재 북한의 기업들은 스스로 생산계획을 수립하여 상품을 생산하고 그것을 시장에 내다팔아 이윤을 남겨서 근로자들에게 생활비를 지불하고 있다.

북한 언론에는 기업경영을 잘해서 생활비를 이전의 20~30배로 올린 성공사례들이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그 결과 북한 근로자들은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 시장과 친숙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장마당’을 기반으로 자체 생산과 무역을 전개하면서 부를 축적한 이른바 ‘돈주’라는 신흥부유층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들은 최소 10만 달러 이상을 굴리고 있는 사금융업자이며 상당수 북한경제전문가들은 이들을 북한 사회주의의 자본주의화를 이끄는 ‘시장세력’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데 현시점의 북한 경제에서 사회주의 국영경제와 장마당경제의 점유율이 각기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아는 이는 사실 없다. 

어떤 보도들을 보면 북한이 자본주의사회가 다 된 것같은데 평양의 국영상점들에 국산품들이 가득하고 손님들이 북적거리는 사진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이 둘이 공존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중요한 점은 남북경협을 위해 방북한 우리 기업인들이 만나게 될 북한 인사들은 장마당의 돈주들이 아니라 북한 사회를 이끄는 ‘주류 세력’들이라는 것이다.

남북경협으로 마주칠 사람들은 '장마당 돈주'가 아니라 북한 주류세력 

그들은 여전히 개인이익이 아니라 ‘기업활동을 창발적으로 하여 당과 국가 앞에 지닌 임무를 무조건 수행하기 위해’ (『근로자』 2016년 7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에 대한 설명 중에서 인용)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현재 북한 사회가 지향하는 인간상은 북한에서 새로 발표되는 소설들을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북한 소설들은 인민들에게 당의 정책을 전하고 교육하기 위한 교과서적 역할을 한다.

필자가 80년대에 읽었던 북한 소설 속의 노동자들의 대화는 소설 제목조차 잊었건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해가 졌습니다. 이제 작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아니오, 우리에게는 아직 더 일할 힘이 남아있습니다.”

자본주의 예술작품의 드라마틱한 갈등구조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솔직히 소설로서의 재미는 적다.

다만 북한사회가 인민에게 요구하는 이상적 인간형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지난 2018년 발표된 북한 단편소설 「불보다 뜨거우라」 역시 공동체를 위한 헌신을 인간의 최고의 미덕으로 그리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소설에서는 채탄공 청년과 그 애인의 갈등이 그려진다. 막장이 무너지는 위기 때 혼자만 살겠다고 허겁지겁 내뛴 채탄공 청년.

그날 이후 청년과 애인 사이에는 ‘답답하고 숨막힌 침묵’이 계속된다. 
애인의 불만은 ‘당신이 혼자 내뛴 그때에 막장에 동지들이 있지 않았는가’라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쉽게 공감하기 힘든 갈등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동지들을 구하려다 내가 죽을 수도 있는데?

결국 채탄공 청년과 애인의 갈등은 채탄공 청년이 ‘이기적 인간’에서 ‘이타적 인간’으로 ‘개과천선’하면서 해소된다. 


40여 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두 소설의 설정은 한결같이 사회주의적 이상과 개인주의적 욕망의 대결 속에서 사회주의적 이상이 승리하는 것으로 변함이 없다. 

김정은 위원장의 취임 일성도 “우리 인민들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였다.


그냥 부귀영화가 아니라 ‘사회주의 부귀영화’인 것이다. 


오늘의 교훈.   다음 중 북한 식당에서 알맞은 인사말은?

“많이 파세요.”(0점) 

“잘 먹었습니다.”(50점)   

“봉사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10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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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영/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사무국장.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조사발굴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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