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경쟁력은 중국의 10배 , 확장되면 국제공단 될 것
개성공단 경쟁력은 중국의 10배 , 확장되면 국제공단 될 것
  • 이재영 기자
  • 승인 2019.07.0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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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과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을 지낸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8명 일행은 6월 12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소속 의원을 만나 ‘개성공단 설명회’에 나섰다. 
“개성공단은 퍼주기가 아니라 평화를 정착시키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호소했다. ‘개성공단 재개’에 부정적인 미 의회를 상대로 한 설명회가 당장 그들의 인식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개성공단’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개성공단의 기계설비가 너무 오랜 동안 남쪽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공단 재개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김진향 이사장을 만나 개성공단의 경제적 효과와 재개 필요성을 물었다.

 

개성공단에 입주하면 어떤 혜택이 있나.

개성공단은 남북경협의 상징 같은 곳이다. 투자대비 수익으로 따지면 개성공단 같은 곳은 전 세계에서 단 한 곳도 없다.

임금, 세금 모두 합쳐 연간 1억 달러 정도 개성에 투자해서 5억 달러의 생산품을 가져온다. 무관세 혜택 등까지 더하면 우리 기업이 15배에서 30배의 이득을 본다.

입주했던 기업을 통해 이미 증명되었다. 불과 123개 기업의 가동으로 남측 협력업체 3800여 개가 안정적인 거래처를 확보했고 일자리도 8만 개나 생겼다.

 

중국 전문가들은 5년 후쯤 한국 제조업이 중국에 완전히 종속될 것이라고 본다.

개성공단이 한국 제조업의 활로가 될 수 있나. 지금이라도 개성공단이 재가동된다면 우리는 확실히 중국을 앞설 수 있다.

중국을 압도하는 경쟁력은 개성공단 가동 14년으로 이미 증명되었다. 중국은 세계 제조업을 석권하고 여러 분야에서 한국을 넘어섰다.

한국 제품과 경쟁하는 단계를 넘어 이제 웬만한 제품은 중국으로 수출하기 어렵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중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

그런데 개성공단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비교우위를 확실히 뛰어넘을 수 있다.

 

공단의 비교우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우선 땅값만 보자.

 개성공단의 땅값은 북한과 합의해  ㎡당 0.64 달러로 책정됐다. 중국 허베이성(34.8달러)에 비해 50분의 1 수준의 헐값이다. 임금은 연장, 야간, 특근에 일요일까지 근무하는 경력 노동자가 한 달에 15 만원이다.

매년 임금인상은 5%로 합의되었다. 개성공단에서 만든 의류제품은 아침에 생산해서 옷걸이에 건 채 60㎞를 달려 오후에 서울 백화점에 도착한다. 이렇게 저렴한 원가로 생산된 제품에 그 어느 나라의 제품도 맞설 수 없다.

 

개성공단이 처음 계획한 규모보다 작게 운영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 2008년 새 정부는 기업인들이 요구한 기숙사를 ‘짓지 말라’고 했다.  개성공단은 노무현 정부 때 총 2천만 평 부지에, 인구 50만 명의 대도시를 10년 안에 만들기로 하고 시작됐다.

2008년 정권이 바뀐 뒤부터 개성공단의 추가 투자가 중단되었다. 애초 공단의 규모는 배후부지 1200만 평 에 공단 800만 평으로 합의됐다. 모두 3천~5천 개 기업 의 입주를 상정한 것이었는데, 그 중  125개 기업만 입주했다.

2003년 착공해서 2004년 제품을 생산하고, 2007년까지 관련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남과 북은 제도가 미비한 상태에서도 서로 잘해 보려고 애썼다. 2007년 12월 양측이 힘들여 합의한 내용은 개성공단 발전에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개성 이외의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북한 직원을 위한 합숙소 건설, 출퇴근 도로 개설, 탁아소 건립 등과 관련된 것이다.

2008년 1월, 2단계 150만 평을 착공해야 했는데, 이명박 정권으로 교체된 후부터  합의사항이 진행되지 않고 투자허가도 나지 않았다. 북측이 약속이행 문제를 들고 나왔다. 이때부터 당국 간 관계가 나빠지고 개성공단의 비정상화가 시작되었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 시절 경험이라며 “개성공단에 기숙사를 건립하면 노사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이 서면합의한(2007년 12월)  기숙사 건설 등을 촉구하는 기업인들에 대한 답변이었다. 정상화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 해도 ‘닫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문을 닫는 쪽으로 움직였다.

 

중견기업은 위탁가공업뿐 아니라 북한 내수시장에도 관심이 많다. 개성공단이 다시 정상 가동된다면 북한 시장 에도 진출할 수 있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 40통 이상씩 개성공단 입주 문의 전화가 폭주했다. 개성공단에 1천개 이상 제조업체가 입주하면 남측 협력업체만 5만 개가 된다. 입주 기업이 5천 개면 남측 협력업체는 10만 개에 이른다. 외국기업을 유치해 국제공단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북한은 2013년부터 20개가 넘는 경제특구를 지정했다. 이곳에도 국내자본과 해외자본이 들어갈 수 있다. 경협이 고도화되면 북한의 원자재가 사용되고 북한에서 생산한 제품이 북한의 내수시장에 판매된다. 북한의 소비 시장도 급속도로 커갈 것이고, 북한의 기술 인력과 남한의 상업화 능력이 합쳐지면 그 힘은 엄청나다. 개성공단은 남과 북이 함께 그런 잠재력을 모으는 터전이다.

 

같은 민족, 같은 언어, 같은 지역의 경제협력은 장점도 있지만, 오랫동안 정치적으로는 적대시하면서 생긴 간극이 크다.  

북한과 사업을 하려면 북한의 생활양식,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침인사를 왜 안 했는지 모르면 오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북한의 집단주의, 공동체주의를 이해하면 생산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내가 직접 경험했다.

개성공단은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이어서 ‘평화의 제 도화’를 하자고 시작한 것이다. 전쟁상태에서 수십 년을 이슈와 살아온 그들에게는 평화의 방편으로 개성공단 설립에 동의했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동기는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외국 자본 이 들어오고, 남북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면 전쟁보다 ‘평화’가 가까이 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북측 노동자 한 달 월급 6만 원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북측은 개성공단 건설로 주력 군부대 1~2개 사단을 후방으로 후퇴시키기까지 했다. 이것을 제안한 사람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다시 말해 개성공단은 남과 북이 서로 이해를 넓히는 무대인 것이다. 북한이 추구하는 경제적 동기 이면에 개성 공단 출범에 담긴 평화의 상징성을 봐야 한다. 평화와 경제가 두 바퀴로 굴러가면 한반도에는 상상 이상의 일들이 벌어진다.

 

최근 정부의 방문 허가가 났는데, 유엔제재 속에서도 개성공단 재가동이 가능한가.   

유엔 안보리 제재로 개성공단을 닫은 것이 아니다. 2016 년 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갑작스런 전면중단 결 정으로 문을 닫았고 기업인들은 허겁지겁 빠져나왔다.

2017년 12월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 조사에서도 ‘대통령 개인의 명령 하나로 중단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폐쇄 이후 흔히 인용되던 ‘북측 노동자 임금이 핵미사일 개발에 쓰인다’는 북한 이탈주민의 증언도 알고 보니 개성공단이 시작하기도 전에 탈북한 사람의 말이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관계가 어려운 시기에 북에 투자한 남측 기업인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켜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남측 인사들이 개성공단을 일컬어 북한의 '달러 박스'인양 호도하곤 했다. 그런 주장은 북측이 보기에 자기 지도자의 존엄을 치명적으로 건드리는 것이고 그 결과 안보위험으로 변질돼 버렸다.

 

4.27 정상회담 이후에도 기대와 다르게 개성공단이 여 전히 가동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북한은 어떻게 문제제기를 하나.

개성공단 재개 결정을 못 내린 우리가 북측에게는 한심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북측은 “왜 귀측은 말만 하면 제재를 이야기하느냐”고 되묻곤 한다. 제재의 핵심은 달러, 즉 현금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달러 없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요컨대 ‘아무런 전제 조건이나 대가 없이’ 하겠다는 입장이다.

현물도 아니다. 현물은 우리 쪽에서 먼저 나온 말이다. 그러다 하노이 북미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자 북측은 엄청난 분노를 드러내곤 한다. 두 지도자가 광대 짓을 한 것이냐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개성공단 폐쇄로 북한에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북한은 그 인력을 중국 국경지대에 배치하면 3-4배의 소득을 더 올릴 수 있다. 개성공단은 북의 달러 박스가 아니라 오히려 남측의 달러 박스 였다.

그럼에도 갑자기 오로지 대통령의 판단 하나로 남 북 간의 약속을 깨뜨린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정부의 결단으로 재가동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가 여전히 살아있는데, 개성공 단 재가동이 가능할까 하는 의견도 많다. 

유엔제재 때문에 불편한 점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일부만이라도 재가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공장을 우리가 살펴볼 권리도 있는 것이다. 

신뢰구축과 평화의 제도화라는 남북 간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남측이 능동적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수동적 상황인식과 소극적 태도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제재의 틀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지 않은가. 

제재의 틀 속에서 인적교류는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이산가족 고향 방문과 일반 국민 의 북한여행을 언급했다.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미국의 제재와 관계없다. 우리의 독자제재도 관계없다. 중국은 자신들 운송수단으로 북한에 당일 관광을 다녀오기도 한다. 우리도 개성의 당일 관광이 가능하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6.15선언과 10.4선언 시대처럼 북한에 여행을 가야 한다. 더욱이 지난해 1년 동안 북한을 여행한 외국인이 120만 명을 헤아린다. 지난해 정상회담 때 ‘삼지연 직항로’ 이야기도 나왔었다. 다른 나라 사람도 가는 데 우리가 왜 못 가나.

 

한국 정부가 아무리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싶어도 미국의 시각이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당장 미국 국내정치를 바꾸지 못하지만 우리 정책은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우리의 손과 발을 묶는 전제, 즉 ‘비핵화의 진전에 맞춰 남북관계 풀겠다’는 연계정책은 이제 그 프레임을 바꿀 때가 됐다. 한미동맹, 한미관계 중심으로 북한을 볼 것이 아니라, 각 사안을 남북관계 중심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네오콘을 못 넘는데 우리가 볼턴을 어떻게 넘을 수 있나. 북측의 정책도 우리가 못 바꾼다. 우리 스스로 남북관계를 활성화시키면 미국도 움직일 것이다. 남과 북이 자주 만나면 미국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것으로 생각한다.

 

개성공단 정상화를 포함해 향후 유망한 남북경협 분야 를 전망해볼 수 있는지.  

북한과 IT 인력의 협력 등 모든 걸 할 수 있다. 모든 고부가가치 업종에서 남북경협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의 독자제재가 아주 엄혹해서 안 된다.

바스날 협정,  EARP규정, 적성국 교역법에 근거해 원천 기술이 포함된 주요 설비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IT 는 지금 힘들다. 현재 북미관계는 법적 제도적으로 전쟁 중인 상태다. 남북한과 미국 등 당사국이 전쟁상태를 끝내는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에 서명하면 개성공단에는 실질적으로 모든 산업이 다 들어갈 수 있다.

김 이사장은 ‘최대압박’ 기조로 일치단결한 미국 의회를 찾아 그 자리에서 미국 의원을 향해 ‘개성공단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또 역설했다.

“개성공단은 유엔 제재 사항이 아니다. 개성공단을 우선 재개하면 북미회담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개성공단은 남북 간 최초로 맺은 평화 공약이다.”

김 이사장은 그동안 찾아오는 방문객에게 개성공단과 관련 개별적으로 설명했으나, 최근에는 그룹별로 설명회를 갖는다. 방문객들에게 그는 “세무, 노동, 회계 등 많은 것이 궁금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진향 이사장은 세종연구원 북한연구센터에서 일하다가, 참여정부 인수위원회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설계 작업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에서 일 하던 중 2008년 2월 학자로서 더 깊은 현장체험을 위해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 부장으로 근무하기를 자청했다.

그는 그곳에서 일하면서 세무, 회계, 세금, 임금협상 등 남북 간의 이질적인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데 힘썼다. 이때 북측과 부대끼고 협상하며 얻은 교훈은 ‘법과 제도보다 남북이 서로 만나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이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김 이사장은 요즘 남북경협을 준비하는 개인과 기업에게 개성공단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제공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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