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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우 "문재인 정부, 남북문제 비상한 각오로 비상한 행동 해야"
조성우 "문재인 정부, 남북문제 비상한 각오로 비상한 행동 해야"
  • 임미리 편집위원
  • 승인 2022.01.01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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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우 민화협 전 상임의장】
 1950년 출생
 민주청년운동협의회 의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조국통일위원장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북해외 실무회담 대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조국통일위원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
 도시의 농부들 이사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
 겨레하나 이사장(현)

 

조성우 전 민화협 상임의장(사진-남북경협뉴스).
조성우 전 민화협 상임의장(사진-남북경협뉴스).

민화협, 인수위 시절 감옥서 DJ에게 편지로 제안

▶ 민화협 창립 얘기부터 부탁드립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 시기예요. 제가 범민족대회 건으로 감옥에 있을 때였는데 노사정위원회를 만든다고 해서 디제이(DJ)한테 편지를 보냈습니다. 노사정보다 더 큰 틀에서 민족 전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기구가 필요하다고. 석방돼 나오자마자 다시 찾아뵙고 상의를 드렸지죠.

이름은 디제이가 직접 지었습니다. 북쪽은 간단하게 민족화해협의회였는데 김 대통령이 “민족이 화해협력하기 위해 범국민적으로 협의한다, 그래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다.” 하시더군요. ‘민족’과 ‘국민’이 다 들어간 그런 이름이 어디 있습니까 했지만, “그냥 그렇게 갑시다” 해서 민화협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제안했지만 추진이 일사천리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통일부장관이 강인덕 씨였는데 민화협 결성에 대해 우려를 하는 것 같았어요. 결국 김홍일 씨가 참여하면서 추진이 본격화 되었습니다.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통일부 장‧차관, 실장, 국장과 우리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의장단이 첫 회의를 가졌죠. 그래서 통일부에서도 실무자를 보내고 재야, 보수, 진보, 망라한 시민단체, 그리고 각 정당에서도 실무자를 보내기로 했죠.

▶ 보수정당에서도 응했다는 게 독특하네요.

정당뿐 아니라 다 쫓아다녔어요. 재향군인회, 자유총연맹, 상이군경회 사무실까지 다녔으니까요. 재밌던 것은 회장단한테 제안을 하면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반응하다가 한 30분만 지나면 다들 의자를 당겨 앉고서 얘기를 들으려 하더라고요. 대표적으로 상이군경회 윤재철 회장 경우 처음에는 문전박대를 하다가 술 좋아하는 양반이라서 술 사갖고 가서 몇 번 말씀 드렸더니 같이 할 만 하네 하시더라고요.

상이군경회장, 평양서 연설 "우리만큼 평화 원하는 사람들 있겠는가"

2000년대 초에 평양서 무슨 대회가 있었는데 내가 윤재철 상이군경회 회장님이 대표연설을 하기로 했다고 하니까 북에서 난리가 났지요.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 의장님께서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고. 북쪽도 처음에는 걱정을 했지만 결국 마음을 바꿨죠. 내가 그랬습니다. 어떻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만 통일운동을 할 수 있느냐. 상이군경은 전쟁의 직접적인 당사자인데 어떻게 그분들하고 얘기를 안 하고 통일운동을 할 수 가 있느냐. 그래서 북에서 물러섰지요. 북도 합리적으로 얘기를 하면 받을 건 받습니다.

당시 그분 연설이 참 감동적이었어요. “우리는 몸 안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그분도 하반신이 없는 분이니까 휠체어 타고 계셨죠. 그런 분이 “우리만큼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는데 참 멋있었습니다.

그때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다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DJ 역량이었죠. 정말 경륜과 기량이 있는 분이었죠. 6‧15공동선언 때 미국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거든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한편으로 ‘페리 프로세스’도 하면서 차곡차곡 설득하고 결국 6‧15까지 만들어낸 그건, 정말 엄청난 일이었죠.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피습사건으로 사임

▶ 지금은 민화협을 관두셨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2015년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 때문이었죠. 그 일이 있은 게 민화협 조찬 행사였어요. 우리마당통일문화연구소(우리마당) 김기종 대표가 리퍼트 대사를 공격했죠. 김기종은 참석자 명단에 없었지만 얼굴을 알고 있던 행사 관계자가 입장을 시켰던 거죠. 김기종 씨가 자신을 민화협 회원으로 밝혔나봐요. 그런데 민화협은 단체 회원만 있고 개인 회원은 없거든요.

하여튼 민화협 회원이라고 하니까 조중동에서 난리가 났고 상층은 보수‧진보가 균형 있게 구성돼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조성우 사단이라고 보도를 했죠. 그래서 별 수 없이 사임하고 지금은 지도위원으로 있어요.

2000년 10월10일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 참관 때 사진. 왼쪽부터 당시 조성우 민화협 남쪽 대표, 김용태 민예총 이사장, 김영성 민화협 북쪽 준비위 부위원장, 박인배 민예총 기획실장.
2000년 10월10일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 참관 때 사진. 왼쪽부터 당시 조성우 민화협 남쪽 대표, 김용태 민예총 이사장, 김영성 민화협 북쪽 준비위 부위원장, 박인배 민예총 기획실장.

▶ 사임하신 뒤 민화협에 변화가 있나요?

남남대화가 약해진 것 같습니다. 민화협은 출범 때부터 기본 임무에 남북화해뿐 아니라 남남대화가 있습니다. 전에는 그쪽으로 애를 많이 썼죠. 예를 들면 구월산 반공빨치산 참모장 하던 분하고 전대협 의장들하고 대화도 하고. 배 타고 금강산 갈 때였는데, 배에 타고 밤새 가는 동안 눈도 안 붙이고 얘기를 해요. 그리고 배에서 내릴 때는 다들 “이런 자리 자주 좀 만들어 달라고.” 그리고 자유총연맹 강당에 가서도 얘기를 했죠. 나도 토론자로 참여하고 양쪽 여섯 명씩 해서 언쟁이 세게 붙은 일도 있죠. 결론은 늘 “고맙다, 이런 자리 자주 만들어 달라.”죠.

그런데 이후에 남남대화가 거의 유명무실화 됐죠. 민화협 운동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전개가 됐더라면 적어도 태극기부대가 없었거나 위력이 약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민화협은 조직이 아닙니다. 일종의 얼개지요. 권력과 운동의 동거를 실험하는 네트워크지요.

민화협, 남북화해뿐 아니라 남남대화도 기본임무

▶ 남남대화 약화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민화협 내적인 운동력의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운동력이 부족하면 당연히 정부가 주도하게 돼 있죠. 관변단체가 되게 돼 있어요. 민화협의 생명은 운동력에 있어요. 자기 운동력이 있어야 권력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권력(정부기구)과 발 맞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 민화협 하시면서 북한과 교류가 많으셨을 텐데 경협 사업도 있었습니까?

직접 하지는 않았어도 주선은 했죠. 우선 ‘겨레의 숲’이 있죠. 북한 산림녹화사업 하는. 북한이 2006년 우리한테 산림복구 지원을 요청하면서 시작됐죠. 양묘사업, 조림사업, 방제사업 등이 포함돼 있는데 민화협이 네트워킹을 한 거죠.

‘고구려 유물전’도 있었죠. 문화교류에 속하지만 넓게는 경협에 들어가겠죠. 고구려 유물전은 비공식적으로만 거론하다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에야 북한에 공식적으로 제의할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 유물을 가져와 코엑스에서 석달간 전시했죠. 북한에서도 내려와 관람하고. 불안정한 남북관계에서 국보 네점이 포함된 귀한 고구려 진품 유물들을 북한이 남한에 내려보내는 일은 손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밖에 뭐 많았어요. 모래사업, 수산사업도 있었고, 대마 하시는 분도 주선을 했고. 경협단체는 아니지만 경협을 위한 창구 역할, 안내 역할을 했다고 봐야죠. 많은 분들이 참 헌신적이었는데 대마 하던 분이 특히 생각이 납니다. 대마가 약용으로도 쓰이죠. 아주 훌륭하신 분인데 진전이 잘 안 됐어요. 아직도 유효하기는 하지만요. 모래도 꽤 들여왔죠. 아연 같은 광물을 들여오던 분도 계셨고. 맥주, 소주도 들여오고.

남북경협, 대북지원에는 좌우 구분 없어

▶ 대북사업 하시는 분들의 이념적 지향은 어떤가요? 보수도 있었나요?

통일부 차관급 하던 분이 하는 단체가 있었어요. 아주 보수적인 단체죠. 주로 경북 쪽에서 활동하는. 제가 그 조직의 의장단 모시고 북에 갔는데 실제 협약을 맺었죠. 경제협력이라기보다 지원 성격이 강했는데 지원을 아주 많이 했어요. 의외로 보수, 진보를 넘어서 북하고 만나게 해주고 안내를 하면 일이 성사가 잘 되더라고요. 일일이 얘기할 수는 없지만 아주 많은 사례가 있어요. 경협은 물론이고 대북지원도 이념에는 좌지우지 안 된다고 볼 수 있죠.

▶ 북에서도 마찬가지인가요?

처음에는 안 그랬죠. 예총하고 민예총 함께 가면 맨날 민예총하고만 얘기를 해요. 내가 끝나고 따로 “마음에 맞는 사람하고만 통일할 것이냐. 어렵게들 왔으면 따뜻하게 맞이하고 한 마디라도 그쪽하고 더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항의했죠. 그러고 나면 그 다음에는 좀 나아지더라고요.

김정은 체제 들어 인민경제 중심으로 재편

▶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경제의 변화는 무엇인가요?

군 경제와 인민 경제가 따로 있다가 김정은 체제 들어 통합을 했다고 볼 수 있죠. 그 와중에 상당한 숙청이 있었던 것이고. 2021년 초 8차 당대회 때 ‘노동당 만세’가 아니고 ‘인민 만세’가 나왔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군정치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로 가면서 인민경제 중심으로 재편이 된 거죠. 공식적으로 큰 변화가 있은 거죠.

▶ 남북관계가 대선 의제에서 실종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표가 안 된다고 생각해서겠죠. 북측이 남측의 대화 요청에 잘 응하지 않으면서 남북대화가 교착 상태이기도 하고. 한미동맹을 남북관계에서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귀착될 수 있을 겁니다. 민간 차원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정치, 군사적인 문제입니다. 지금 북미 간에도 합의했던 한미군사훈련, 연합훈련을 여전히 하고 있고, 유례없는 국방비 증액도 있었습니다. 북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는 이런 군사적 긴장이 도움이 되는 걸까요? 그럴 수밖에 없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미국이겠지만 결국 그걸 넘어서야 북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건 결국 문재인 정부의 역량과 의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 임기 내에 어느 정도의 공간을 확보하고 차기 정부에 넘길 건지 비상한 각오를 하고 비상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역사적 책임이고 방기하면 안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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