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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배낭 매고 평양시내를 돌아다녔죠"
"혼자 배낭 매고 평양시내를 돌아다녔죠"
  • 백찬홍 대표기자
  • 승인 2021.12.1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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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 남북협력의 산증인, 조계종 원로 효림 스님 인터뷰
남북경협뉴스, 남북간 체온과 눈높이 맞추는 온도계 역할을 해야

남북경협뉴스가 조계종 원로이며 불교신문사 사장을 지낸 효림 스님을 모시고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문제와 경협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효림 스님은 최근 본지 상임고문으로 취임했다. 

1952년생인 효림 스님은 1968년 운수납자로 수행한 이후 1994년 조계종내 적폐세력 청산을 위한 종단개혁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거쳐,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실천불교전국승가회 공동의장, 북한동포돕기 민간단체전국회의 공동대표, 만해마을 사무총장을 지냈다. 현재는 조계종에서 스님들에게 선을 가르치는 교선사와 경원사(세종시)주지를 맡고 있으면서 자네 도가 뭔지 아나10권이 넘는 시집을 낸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6년 북한 대홍수 계기로 북한문제에 관심

스님께서는 그동안 남북문제에 많은 관심과 함께 실천적 활동을 하셨습니다. 어떤 계기나 목적 의식 이런 부분이 있으셨는지요.

“1990년대 중반에 정확히는 96년도에 북한에 대홍수가 나서 큰 기근이 들었다는 소식이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자 우리 사회에 통일 운동 단체들이 가장 먼저 앞장서서 북한돕기 운동에 나서게 되고 이어서 시민사회부터 노동단체 등도 대대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그 당시 저는 북한동포돕기 민간단체전국회의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불교계를 중심으로 모금운동을 한적 있습니다.”

당시 어느 정도 지원하셨습니까?

지금 정확한 액수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은 불교 쪽에서 대략 30억 상당의 옥수수를 구입해 보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다른 단체들하고 달리 만주에 있는 옥수수 농장에서 직접 옥수수를 사서 보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우리 세대는 시골에서 성장했고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게 좋은 건지 잘 알거든요. 그래서 수확한 햇 옥수수중에서 가장 좋은 품질로만 산거지요.”

저도 만주지역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곳이 옥수수 주산지더군요. 그걸 주정으로 하는 고량주를 많이 생산하고요

북한에 옥수수를 보낸 후에 미국 국적으로 NGO활동을 하면서 북한 돕기를 많이 하고 김정일 위원장과 친분이 있는 유모라는 여성분이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이 김정일 위원장이 보내는 선물이라면서 저에게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북한에서도 지원사업에 대해 인정을 한 것 같습니다.”

그 당시 국수 공장 설립 운동에도 관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불교 쪽에서 사리원 국수 공장건설에도 참여한 바 있습니다. 저는 옆에서 돕고 주도는 신법타 스님이라는 분이 했습니다. 국수공장은 꽤 오랫동안 가동된 걸로 압니다. 남북 간에 갈등이 생길 때 마다 어려움이 많았는데 국수 공장이 멈추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법타 스님이 고생 많이 하셨죠.

불교계, 효봉스님과 홍범도 장군 인연많은 금강산 신계사 복원

법타 스님은 그 외에도 금강산의 폐사찰 복원 운동도 열심히 하셨던데.

불교 쪽에서 가장 큰 성과중 가운데 하나죠. 금강산에 장안사, 유점사, 표훈사와 더불어 금강산 4대 명찰로 꼽히는 신계사는 한국전쟁 때 소실돼 주춧돌만 남은 폐허 상태로 남았는데 20006.15공동선언을 계기로 남북 불교계가 공동으로 복원불사를 추진했었습니다. 이후 2004년 본격 착공한지 36개월 만에 대웅보전 등 14개 전각을 복원했습니다.”

불교계가 신계사 복원에 나선 이유가 있습니까?

신계사는 법정 스님의 스승이자 현대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효봉 스님이 출가한 본사예요. 효봉 스님 외에도 아주 훌륭한 선승들이 거주했던 사찰인데 앞서 말한 대로 6.25 때 완전히 전소된 것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을 했죠.  제가 두번이나 방문을 했는데 남한의 옛 사찰을 복원한 것보다 훨씬 더 고증을 잘 거치고 좋은 목재도 사용했습니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주지도 남쪽에서 파견했습니다.”

신계사에 남쪽 스님이 거주하시면서 직접 주지를 하신 거면 큰 의미가 있네요.

"신계사 복원이 또 다른 의미가 있는게, 올해 카자흐스탄에서 유해를 모셔온 홍범도 장군이 승려로 계시기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건 몰랐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홍범도 장군은 학문을 모르는 포수로만 알고 있는데 홍범도 장군은 이십대 때 방황을 하다 신계사 지담 스님을 만나 출가를 했고 이때 민족의식을 키우게 됩니다. 필적도 남아 있는데 매우 달필이고 신계사 생활 1년이 지난 어느 무렵에는 근처 암자에서 지내는 젊은 비구니를 알게 됐는데 이분이 부인인 이옥구 여사입니다. 이후 환속해 의병투쟁의 길로 들어서서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그런 유서 깊은 사찰인데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주지 스님도 철수하고 왕래도 제대로 안되고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과거 정부 금강산, 개성공단 폐쇄는 너무 옹졸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마침 금강산 얘기가 나왔는데 이명박 정부 당시에 관광이 중단이 됐지 않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 말씀 해주십시오.

, 이명박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키고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을 폐쇄시켰는데 참 명분이 참 약합니다. 그 때 금강산 관광의 경우 돌아가신 분께는 안됐지만 박왕자라는 분이 넘어가면 안 될 철조망을 넘어가서 그만 사고를 당하셨는데, 남한에서도 군사 금지구역 철조망에는 경고문이 쓰여 있고 넘어가면 발포합니다. 문제는 도로를 만들어 놓고 교통사고 났다고 도로를 폐쇄하는 경우는 없지 않습니까. 남북 간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유연하게 대처할 생각은 안하고 그걸 핑계로 폐쇄를 한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어떻게 보면 하기 싫은데 명분으로 삼은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을 폐쇄했는데요. 남북경협이 가지는 의미는 어떠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명박 정부가 너무 옹졸한 정부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남북 경협을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북한에도 도움이 되는 등 협력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얘기가 나왔잖아요. 물론 초기에 시작했던 분들은 이익이 나지 않아 고생이 많았지요. 하지만 그걸 통해서 남북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해서 통일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봅니다. 그러다가 개성공단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이익을 올리고 원래 목표했던 대로 북한에도 도움이 된 거죠.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 계속 트집을 잡다가 결국 폐쇄 지경에 왔는데 정말 반통일 세력들의 전략에 말려들어간 거라고 봐야죠.”

북한 방문 때 안내원과 신발 바꿔 신기도

북한 방문을 꽤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몇 번 정도 가셨는지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통해서 정확하게 몇 번이나 갔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갔었습니다. 사실 초기에 갈 때는 비용이 좀 들었습니다.”

―그러셨군요. 평양 외에 묘향산도 다녀오셨죠?

네 경비가 조금 들어갔죠. 처음 들어가기 전에는 북경에서 북한사람들을 만나 회담도 몇 번 하고 그랬습니다. 이후 자주 가게 되면서 경비도 중국이나 동남아 가는 정도밖에 안 들어서 어느 해에는 1년에 두 번 세 번 가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도 신뢰하는 분으로 인정받아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런 점이 좀 있지요. 그렇게 자주 가다보니까 북한에 아는 사람이 많아져서 방문하게 되면 안부를 묻고 또 안 가게 되면 그쪽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나 할 만큼 정도 들고 그래서 다시 가면 세세하게 안부도 묻고 선물도 가져갔습니다.”

어떤 선물을 가져가셨습니까. 어떤 분은 노트북을 놓고 오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비싼 것은 아니고 생활에 필요한 티셔츠나 양말 등을 가져가면 상당히 좋아해요. 어떤 때는 저를 안내하는 사람이 제가 신고 있는 운동화를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 그 사람 신발하고 바꿔 신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법타 스님의 경우는 큰 가방에 선물용으로 줄 수 있는 티셔츠나 내의, 양말 등 한가득 넣어 가시고 했지요. 그건 받는 사람도 부담이 안 되니까요. 북한에서는 필요한 것들이지요. 장소를 방문할 때나 이런 저런 일로 만나는 분들에게 드리게 되면 고마워들 하셨습니다. 선물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북한 방문 때 에피소드들이 많으셨겠습니다.

여러 차례 방문하다보니 짜여진 일정에서 벗어나고 싶어 여행대오를 이탈한 적도 있었습니다. 혼자 배낭을 메고 시내를 돌아다닌거죠. 북한당국이 공식적으로 안내하는 여정에서 빠져나온 겁니다. 모처럼 자유롭게 북한거리를 본거지요. 그렇게 시내를 돌아다녔거든요. 그러다 배가 고파 어떤 식당에 들어갔는데 제법 큰 식당이에요. 그곳을 지키는 경비 같은 사람도 있었죠.”

놀라지 않았나요? 갑자기 나타나셔서 말도 그렇고 복장차림새도 이상하니

"‘어디서 왔습니까이러더라고요. 그래서 남한에서 왔수다라고 했는데도 전혀 경계를 안 해요. 단지 왜 선생님 혼자 돌아다니냐고 그렇게 묻기는 했습니다. 많이 방문하다보니 웬만한 곳은 다 아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묘항산 같은 곳에서는 복무원이라고 부르는 서빙하는 여성들이 얼굴을 알아보고 선생님 또 오셨네요라고 합디다.

지금은 그게 다 끊어졌습니다.

그때는 금강산 관광은 물론 묘향산까지 다녀 올 정도니까 더 큰 기대를 가졌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안타깝습니다. 할 말이 참 많습니다. 사실 개성공단 실질적인 피해자가 누굽니까. 재벌 기업도 아니고 중소기업들, 영세한 분들이란 말이에요. 그런 분들이 고생을 보니, 생각이 없는 정부였지요.”

문재인 정부, 좀 더 능등적으로 남북문제 접근했어야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서는 초기부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만 요즘은 뜻대로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이라는 벽이 있기는 하지만 북한의 기대에 비해 능동적인 면이 떨어진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 부분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너무 주변 국가들의 눈치를 본다든가 그런 거 하지 말고 정부 초기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두세 번 만나고 그랬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어야 하지 않았을 까. 그랬으면 훌륭한 업적으로 남을 건데 그때 시기를 놓쳐 행동으로 못한 것이 무엇보다 좀 아쉽습니다. 다음 정부가 온다 하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문제거든요.”

금강산 관광이라고 성사시켰으면 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그런 정도는 주변국가 눈치를 보기보다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오히려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설득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금강산 관광은 그런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북한을 설득해서 민간차원에서 평양이나 다른 곳에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도 못했으니까 그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미국과의 관계도 있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문대통령과 백두산 정상까지 안내하고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명의 북한 주민 앞에서 연설까지 할 수 있도록 배려까지 했는데 돌아온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정은 위원장이 파격적으로 나오면 이쪽에서는 더 파격적으로 좀 해주는 게 맞기는 하지요. 그럼에서 금강산 관광까지는 어떻게든 했었으면 좋았을 겁니다.”

문대통령 입장에서도 임기가 6개월 안팎이라 북미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외에 남은 임기 동안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 혹시 어떤 걸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예 임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 기간 내에 종전선언이 이루어지면 좋지요. 무엇보다 그래도 하나는 마무리 했구나 하는 안도감과 업적으로 남을 수 있는데 객관적으로 볼 때는 이게 좀 어렵지 않겠느냐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러냐면 초기하고 달리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기대만큼 신뢰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그건 이 정부가 보수 세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수구 세력 이런 사람들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면서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데 때를 놓쳤다고 봅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기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문재인 정부가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반대를 무릅쓰고 확 이루어낼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행보로 볼 때는 어렵다고 보죠, 그래도 남은 임기동안 무언가 확 했으면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내년 3월 대선을 남겨놓고 지금 여야가 치열하게 선거전을 벌이고 있는데 차기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었으면 좋겠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평양 땅을 밟을 때 마다 느꼈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말할 수가 없었거든요. 아 이게 이렇게도 되는구나! 그런 걸 느꼈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까지 15년 그 긴 기간 동안을 어떻게 보면 원점으로 돌아갔단 말이예요.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 처음 북한에 갔을 때는 50대로 팔팔했는데 이제는 다 늙을 정도가 됐어요. 그동안 정부가 소극적이거나 우물쭈물했으니까. 그래서 차기정부에서 남북문제는 최소한도 김대중 노무현 수준은 가야 된다 임기 전반에 그 정도까지는 가고 그리고 거기에서 업그레이드 해서 조금 더 문제를 풀면은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내가 있는 세종 시에서 통일단체 대표를 맡으면서 우리라도 준비를 하고 있자고 했습니다.“

경협뉴스의 재창간을 앞두면서 스님께서 상임고문과 후원회장도 맡아주셨는데 비전과 전망을 어떻게 만들어가면 좋을지 한 말씀 해 주시죠.

그게 제일 어려운 질문이신데 이런 신문이 꼭 있어야 되고 또 있어야 되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우리 사회에서만 역할을 하는 게 아니고 어떤 언론사보다 북한에 자주 가는 신문이 되고 남북 간에 미묘한 차이를 전달하고 서로의 눈높이를 맞출 수는 온도계 역할을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더 나아가서 중재 역할도 하고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는 중간자 역할도 했으면 합니다. 끝으로 이 신문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못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식에서 정부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스님께서 경협뉴스의 방향제시와 함께 여러 흥미로운 얘기까지 해주셔서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자주 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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