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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영화이야기] 재일 조선학교, '박치기!'로 들이받고 '60만 번의 트라이'로 두드려도 차별은 사라지지 않아
[이안의 영화이야기] 재일 조선학교, '박치기!'로 들이받고 '60만 번의 트라이'로 두드려도 차별은 사라지지 않아
  • 이안 객원기자
  • 승인 2019.09.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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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선학교는 일본에 귀화하지 않은 한국인들이 사상적 정체성 이전에, 한국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며 다닐 수 있는 유일한 학교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에 대해 일본은 화이트 리스트 제외 등 경제 보복 조치를 했고, 한국 국민은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맞서고 있다.
한일 간 경제 갈등이 심각한 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일 법원, 조선학교 차별 정당 판결

이렇게 한일 양국이 정부 차원에서부터 민간 차원에까지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사이, 일본에서는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이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판결이 잇달아 내려졌다. 

한국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가 재일 조선학교를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정책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았다. 도쿄 조선 중ㆍ고급학교 졸업생 61명이 ‘수업료 무상화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것은 부당하다‘며 일본 국가를 상대로 한 배상금청구 소송에서, 최고재판소가 이들의 상고를 기각한 것이다. 즉, 일본정부의 재일 조선학교 무상교육 대상 제외 정책이 적법하다고 선언한 것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도쿄에 이어 오사카 조선고급학교를 운영하는 오사카 조선학원이 조선고급학교를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처분의 취소 등을 요구한 소송에서 원고 측 상고를 기각했다. 2017년 오사카 소송 1심 판결에서는 “교육의 기회균등 확보와 관계가 없는 정치적 판단에 기초한 처분으로 위법, 무효”라며 원고 전면 승소 판단이 나왔었다. 그러나 2018년 9월 2심에서는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가 학교 측을 지도해 북한 지도자를 예찬하는 내용의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교육의 자유성을 왜곡하는 ‘부당한 지배’를 받고 있는 의심이 있다”며 1심 판결을 뒤집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지금까지 도쿄, 오사카 최고재판소에서 패소는 물론이고, 나고야, 히로시마, 후쿠오카 지역 소송도 1심에서 모두 원고 패소로 결론이 난 가운데 현재 2심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재일조선인들이 우리말, 우리글, 우리 역사를 배울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차별 실태 알리는 극영화에 큰 호응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와 아동권리위원회는 이미 여러 차례 일본 정부에 ‘학생들이 차별 없는 평등한 교육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 정책을 시정하도록 권고했으나, 바로 잡히기는커녕 차별 정책을 더욱 굳혀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올해 10월부터는 일본정부가 시행하는 유치원생 보육료 무상화 정책 대상에서 조선학교가 운영하는 유치원을 제외한다는 방침까지 세우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조선학교 학생들이 일본 사회에서 겪는 이런 차별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편의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한일 양국에서 제작되어 관객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박치기!> 대중적 인기 높은 일 배우 출연

일본 감독 이즈츠 카즈유키가 만든 영화 <박치기!>는 제목 자체가 한국말 박치기 발음을 그대로 일본말로 옮긴 <パッチギ!>로 되어 있다. <박치기!>에는 조선학교를 다니는 재일한인 학생들 역할에 당시 일본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연기자들이 출연했다. 이 배우들은 그 해 일본의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키네마준보 ‘2005년 베스트 영화’ 1위, 아사히신문 ‘2005년 베스트 영화’ 1위를 비롯해 마이니찌 영화 콩쿠르대상, 음악상, 일본아카데미 영화상 남녀신인상, 우수작품상, 우수감독상, 우수각본상 등, 2005년 일본의 13개 영화상 가운데 30여 개 부문에서 상을 석권했다.

1968년을 시대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교토의 히가시 고교 학생들이 조선고등학교 여학생들을 희롱하자, 조선고등학교 남학생들이 몰려와 히가시 고교의 스쿨버스를 뒤집어버리는 데서 시작된다. 이렇게 벌어진 패싸움이 더 큰 폭력적 상황으로 확대되기 전에 일본 학교 선생이 나서서 양쪽 학교 학생들이 친선축구시합을 하도록 이끈다. 

이 영화는 이들 간의 패싸움과 스포츠를 통한 화해가 진행되는 상황을 그려내면서, 이전 세대의 역사적 과오가 어떻게 젊은 세대들까지 얽어매고 있는지를 여러 층위에서 현실적으로 짚어낸다. 

조선학교 여학생 경자(사와지리 에리카)와 친해지기 위해 ‘임진강’이라는 노래를 배우는 일본 남학생 코스케(시오야 슌)는 이 노래에 얽힌 사연과 더불어 재일한인의 역사적 내력도 배우고, 한글도 공부한다. 그러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 한국전쟁, 남북분단의 현실까지 알게 된다.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는 조선학교 학생들은 졸업하고 나서 일본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기 어렵다보니 가족과 친구들이 살고 있는 일본을 떠나 북한으로 가서 정착하려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에게는 북한 또한 실체로서의 조국이 아니라 상상의 조국일 뿐임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북한 노래 ‘임진강’ 금지곡으로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은 <박치기!>는 재일 조선인에 대해 “남도 북도 아닌 정중앙에서 생각할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그는 재일 조선인에 대한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일본이 무엇을 잃어버렸고 외면하려 하는지에 집중하면서 분단의 고통을 내재한 노래 ‘임진강’을 통해 우회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임진강은 한반도 북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있다. 북한의 노래인 ‘임진강’은 영화가 배경으로 하는 시대인 1968년 당시 일본 가수인 더 포크 크루세이더가 다시 불렀다가 조선 민요 공식 발매 금지정책에 따라 바로 금지곡이 된 노래다. 

이 노래가 금지곡이 된 일본 사회의 차별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기 위해 <박치기!>가 축구를 통해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다가갔다면, <60만 번의 트라이>는 럭비를 통해 조선학교 학생들을 이끌어내는 다큐멘터리다.

 

<60만 번의 트라이> 럭비 통해 조선학교 학생 이끌어

노력하다, 해보다, 시도하다, 애쓰다, 하려고 하다라는 영어 기본 단어 말고, 그냥 그 용어 그대로의 트라이는 럭비 용어다. 상대편의 인골(ingoal) 안에 공을 찍는 일. 그러면 4점을 득점하고, 덤으로 골킥을 해서 추가득점을 할 권리를 얻는다.

그 트라이를 60만 번이나 한다는 <60만 번의 트라이>는 럭비 영화다. 럭비는 우리나라에서는 비인기종목이다. 그 비인기종목인 럭비를 하겠다고 일본에서, 그것도 지방도시 오사카에서, 재일조선인 3세들이 뛰고 구르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와 함께 김명준 감독의 <우리 학교>(2006년)는 조선학교 아이들에 대해 엉뚱한 오해를 풀어준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그 아이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정식학교가 아닌 각종학교로 분류되어 공식적으로 학교 졸업자격을 얻지 못해 따로 ‘대입검정’ 시험을 치러야하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도 그 학교를 지키고 있는지 알아보지도 않은 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학교> 없었다면 정대세도 없어

<우리 학교>가 없었다면, 지금 정대세 선수가 K리그에서 뛰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며, 고 권리세 양이 가수의 꿈을 한국에서 펼쳐 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고>(2001년,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나 <박치기>(2006년,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 같은 상업 극영화들이 일본 관객들에게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공감과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박사유, 박돈사 두 감독이 민든 오사카 조고 럭비부 소년들을 통해 60만 재일조선인을 돌아보는 <60만 번의 트라이>도 지난 1월 오사카에서 대중에게 공개된 이래 지금까지 일본 전역에서 상영되며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이 아이들은 어째서 일본에 살고 있게 된 것일까? 그것도 이제는 세상에 없는 나라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면서.

 

‘조선인 정체성 ’무언지 되돌아 봐

그 아이들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조선인이던 시절, 나라가 없어졌다. 왕이 군림하던, 양반들이 목소리 높이던 나라가 없어졌다. 그러더니 ‘내지’인 일본과 조선은 한 나라, 곧 ‘내선일체’라며 총독부가 들어서고, 일본인이 밀려들어 총독부를 뒷배 삼아 땅도 돈도 다 차지하며 근대화를 시켜주는 거라고 거들먹거렸다.

결국 없어진 나라, 식민지 조선의 국민들은 ‘황국신민’이라는 이름으로 징용이며 학도병, 정신대로 차출되기도 하고, 빼앗긴 땅에서 살 길 막막해 간도나 만주, 연해주 또는 일본으로 흩어져 이산민이 되었다. 무장 항일투쟁이나 해외 임시정부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 태평양 전쟁에 끌려가 총알받이가 된 징병자 또 종군위안부로 사선을 넘나들던 사람들 말고도 숱한 사람들이 조국을 떠나야했다.

그러다가 원폭 두 방에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다. 일제강점기 내내 나라 안팎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조선의 국민에게가 아니라 지구촌 곳곳의 식민지를 두고 패권다툼을 하던 연합국에게. 그런 상황에서 조국을 떠난 겨레가 겪은 세월은 가혹했다.

 

독립 후에도 60만 명 일본에 남아

8·15 당시 일본에서 200만이 넘는 동포가 일상적인 박해와 민족 차별에 시달리며 살고 있었다. 이들의 귀국에 대해서 패전국인 일본 정부나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총사령부는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었다. 1인당 1,000원 이상을 갖고 나갈 수 없는 가혹한 상황에서, 1950년 한국전쟁으로 분단이 고착화될 무렵까지도 60만여 명이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계속 일본에 남게 되었다.

북으로 떠났던 이들은 20세기 내내 냉전의 서슬 때문에 ‘소련’과 ‘중국’에 발이 묶여 소수민족으로 살아왔다. 이들은 냉전의 이데올로기 족쇄가 풀린 지금도 동포나 겨레가 아닌 ‘고려인’, ‘조선족’으로 외국인 취급을 당하고 있다.

바다 건너 일본에 있다 광복을 맞은 이들은 일본에 귀화해 조국을 지우거나, 아니면 떠날 때는 하나였던 조국 가운데 남쪽 아니면 북쪽을 선택해서 조국의 반을 잃거나. 아니면 이제는 영영 없어진 나라 ‘조선’이라는 국적을 유지하며 말과 글과 얼을 지키거나, 이 셋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일본에 귀화하면 더 이상 핍박받는 일은 없는 대신 뿌리를 잃게 된다. 남쪽을 선택하면 말과 글을 배우기 힘들어 뿌리를 잊게 된다. 북쪽을 선택하면 전 세계에서 고립된 이방인이 된다. 어디를 선택하든 다른 반쪽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니 그냥 ‘조선’ 국적을 유지하는 ‘자이니치(在日)’의 숫자가 60만이다.

 

가슴 벅찬 응원가

<60만 번의 트라이>는 그 60만 조선인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뜨거운 응원가다. 어느 하나를 얻고자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열심히 뛰고, 웃고, 서로를 믿는 가운데 어른들이 닫아건 빗장을 아이들이 열어가는 세상을 보여준다.

학부모, 선생님뿐 아니라 오사카 조고 아이들은 시합 중에는 편이 갈리지만 끝나면 ‘네 편 내 편’이라는 사이드가 없이 함께 교류하고 즐기는 럭비의 ‘노사이드 정신’으로 함께 달리는 즐거움을 나눈다. 이렇게 일본 학교 아이들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럭비 한마당에서 한일관계와 남북분단 현실이 나아가야 할 길의 방향이 보인다.

<박치기!>에서 축구 선생님은 ‘죽을 각오로 하라’고 했지만 <60만 번의 트라이>의 럭비 선생님은 ‘스포츠가 사회를 바꾸게 하라’고 한다. 박사유, 박돈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영화가 사회를 바꾸는 아름답고 행복한 꿈을 펼쳐 보인다. <60만 번의 트라이>의 관객들은 누구나 남북한 7천 5백만 국민과 재외한인 5백만 모두를 아우르는 꿈을 꾸며, ‘8천만 번의 트라이’를 성공시킬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리기를 가슴 벅차게 응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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