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로 맺은 인연, 백두한라 만나는 꿈 이룬다
감귤로 맺은 인연, 백두한라 만나는 꿈 이룬다
  • 이재영 기자
  • 승인 2019.09.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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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준 제주통일미래연구원장 인터뷰

 

제주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사단법인 남북협력제주도민운동본부가 자리잡고 있다. 바닷바람 냄새가 나는 건물 2층으로 들어서자마자 벽면 한 쪽을 가득 채운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의 남북교류협력 역사의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이다.  

고성준 원장은 제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2000년부터 10년 넘게 감귤지원사업 전면에서 활동했다. 시원한 외모에 거침없는 설명을 이어가는 고 원장은 제주도 남북교류협력의 산 증인이다. “감귤로 시작해 한라와 백두가 만나는 꿈이 실현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고성준 원장으로부터 제주도 남북교류의 역사와 미래를 들어보았다. 

 

감귤보내기, 지자체 남북교류의 효시 

“1998년 제주도 감귤이 처음으로 북한으로 건너갔습니다. 감귤보내기운동은 범도민운동 차원에서 시작되어 정부와 지역사회단체가 참여하고 대규모 남북 인적왕래로 이어졌지요. 이후 제주도는 지자체 남북교류의 모범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북 고위급 회담이 제주도에서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방북한 언론사 사장단 앞에서 “한라산 일출을 감상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제주도와 한라산은 그만큼 남북 모두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북한의 로동신문은 2018년 11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주도 귤을 성의껏 마련하여 보내어왔다.”고 보도했다. 북한에도 ‘제주도 귤’이 널리 홍보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이 남쪽을 방문할 경우 한라산 등정을 안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남북 모두 ‘제주도’를 언급하면서, 제주도는 신남북관계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지난 해,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김정은 위원장 제주 초청’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 가능성을 물었다.

“실제 가능한 일입니다. 서울 답방 다음으로 제주도가 유력합니다. 한라산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한라산 등정이 이뤄져야죠. 제가 북한 쪽으로 백두산을 등정해봤지만 백두산은 정상 300미터 지점을 남겨두고 차량을 이용합니다. 제주도는 헬기를 이용해야 하기에 지난해 원희룡 지사가 기자들과 함께 한라산 사전답사도 해둔 상태죠. ‘평화의 섬 제주’라는 상징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측 인사들의 제주 방문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다. 정부가 2005년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고, 일찍이 1990년대 초부터 고르바초프 등 세계 정상도 제주도를 방문했다. 1999년 제주도가 처음 감귤을 북한으로 보낸 후 이듬해 6.15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방장관 회담, 장관급 회담도 제주에서 열렸다. 북한 측에서 회담 장소를 제주도로 먼저 제안하면서 장관급 회담이 제주도에서 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성사되진 않았지만 2000년 9월의 북한 김용순 특사 제주도 방문은 김정일 위원장의 제주 방문을 위한 사전 답사 목적이 강했습니다.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전금진 장관급회담 단장, 림동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후속 회담차 제주도를 방문했습니다. 북측 인사들의 제주도에 대한 호감이 컸습니다.”  

북한으로 감귤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제주 감귤이 좋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떻게 제주 감귤이 북측으로 건너갔던 것일까. 

“제주도 감귤은 10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재배하는 겨울 작물입니다. 그때만 해도 가공처리시설이 부족했습니다. 감귤은 2년에 한 번씩 풍년이 드는데 남아도는 감귤을 주스로 생산하는 등의 가공처리시설이 많지 않았습니다.”

과잉 생산된 감귤을 경제난에 힘들어 하는 북한에 전달해보자, 이렇게 시작한 감귤보내기운동이 북한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북한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감귤이었기에 북한 주민들의 반응도 좋았다고 한다. 더구나 제주도민들도 감귤 가격폭락을 막을 수 있어 남북이 윈윈할 수 있었다. 

처음 보낸 감귤의 반응이 뜨겁자 제주도는 이듬해 더 많은 양의 감귤을 보내게 된다. 도민운동 차원에서 이루어진 제주도 감귤보내기 운동은 1998년 100톤으로 시작돼 2010년까지 12회에 걸쳐 감귤·당근 총 66,428톤을 지원했다. 


 
도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운동에 의미 

“2000년 평양 6.15 정상회담으로 제주도 감귤보내기 사업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북측에서도 감귤을 많이 보내줬으면 좋겠다는 분위기이고, 감귤이 화해협력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지요. 정부에서도 남북화해 분위기에 도움이 되고 감귤 가격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며 물류비 등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민의 성금, 제주도와 정부의 지원으로 감귤보내기 운동은 전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더욱이 정부 재정이나 인도적 지원을 넘어 제주도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매우 이채롭다. 

“제주도 감귤 보내기 운동은 그야말로 범도민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지자체, 종교계, 상공인,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여 성금을 모았습니다. 또 정부가 물류비를 지원하면서 그야말로 민관이 힘을 합한 교류협력 사업으로 발전한 거죠.” 

고성준 원장이 제주도감귤 보내기가 <윈윈사업>이며 지자체 사업의 모범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남북의 이해와 이익을 고루 살리는 사업으로 상생공영이라는 기조에 부합하는 선례를 만든 사업이었다는 것이다. 

“저희는 제주 감귤보내기 운동이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의 효시라고 표현합니다. 도민이 동참한 자발적 감귤보내기가 인적 교류로 확대되었습니다. 북한은 화답하는 차원에서 2001년부터 4차례에 걸쳐 제주도민을 초청했습니다. 도지사, 정치인, 상공인, 감귤 농민들을 비롯해 도민대표들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제주도민의 북한 방문은 한국 국적기로 제주-평양 직항로를 이용하면서 ‘평화의 섬’ 제주도의 이미지도 부각되었다. 

 

제주도의 5+1, 크루즈 사업도 포함 

하지만 감귤보내기 운동은 2010년 5.24 조치로 중단되었다. 단절된 지 10년, 앞으로 제주도의 남북교류협력은 어떻게 전개될까. 고성준 원장은 백두한라의 상징성을 축약한 것이 제주도의 <5+1> 구상이라고 설명한다. 

“2014년과 2015년에 원희룡 도지사가 <5+1>사업을  제안했습니다. 한라 백두의 상징성을 종합적으로 발전시켜보겠다는 취지입니다. 과거 저희가 방북할 때마다 남북사업을 한라-백두로 묶어보자’고 북측에 제안했습니다. 그런 제안을 발전시켜 구체화한 것이죠.” 

원희룡 지사는 ‘2014 민족화해 제주포럼’ 기조연설에서 새로운 제주의 남북교류협력 방안으로 △감귤보내기 사업 재개 △한라-백두까지 남북한 교차관광 △한라산-백두산 생태·환경 보존 공동협력 △제주-북한 평화크루즈 추진 △제주포럼 북한인사 초청을 발표했다. 다섯 가지 제안에 더해 2015년 11월 「Carbon Free Island 2030」선언을 계기로 ‘남북 에너지 평화 협력’이 추가되어 <5+1>사업으로 완성되었다.  

마지막으로 추가된 것이 ‘남북 에너지 평화 협력’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심각한 공해 문제를 겪었던 우리와 달리 북한은 일부 관광특구가 바로 ‘친환경에너지’ 기반으로 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제주도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태환경의 섬입니다. 2030년까지 모든 차량을 전기차, 수소차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또 풍력발전 등 친환경에너지도 제주도가 앞서가고 있습니다. 북한도 백두산, 원산 등을 생태관광지구로 개발한다면, 제주도의 친환경전략을 적극적으로 접목할 수 있는 분야라고 봅니다.” 

크루즈 관광도 현재 제주도가 주력하는 분야다. 현재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북한만이 크루즈 관광 노선이 연결되지 않았다. 남북한 간 크루즈 관광이 연결되면 동북아시아 크루즈 뱃길은 이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현재 강원도, 포항시, 부산시, 제주도가 모두 교류협력사업으로 내걸고 있다. 고성준 원장은 제주 크루즈 노선이 동해와 서해를 국제해양관광지로 바꿀 것이라고 장담한다. 

“매년 대규모 크루즈 포럼이 제주도에서 열리고 유럽의 크루즈선이 제주항에 기항합니다. 제주도는 북한의 서해 남포항, 동해 장전항과 원산항을 잇는 크루즈 남북 기본라인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중국 상해, 청도를 잇는 환서해권 노선과 훈춘, 금강산, 일본, 나진선봉, 블라디보스톡 등 환동해 항구를 연결하는 노선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교류가 재개된다면 우선 북한 측에 ‘크루즈 포럼’ 참여를 요청할 계획입니다.”

 

한라와 백두, 양강도와 협력 계획 

한라산과 백두산은 국토의 상징이자 통일의 상징이다. 2000년 제3차 장관급 회담에 온 전금진 단장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통일의 무지개를 그리는 마음으로 왔다.”고 언급했듯이 북한도 백두-한라를 남북 화합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다.  

고성준 위원장은 제주도가 북한 도시와 지역교류협력을 한다면 양강도가 적합하다고 말한다. 2003년 3차 도민대표단 방북 시 제주도 한라산연구소와 북한 백두산 천지연구소 간 한라-백두 공동학술탐사에 대한 의향을 교환하고 원칙적인 합의에 이른 적이 있다. 2014년 12월 제주도가 ’한라산-백두산 생태·환경 보전 공동협력‘ 사업을 5대 사업에 포함하여 북측에 공식 제안하기도 했다. 

“제주도는 현재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세계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생태환경 보전의 경험을 북한과 함께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지요. 북한과의 생태·환경 및 산림 분야 협력은 글로벌 이슈이자 민간의 축적된 연구협력 역량으로 어려움 없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고성준 원장은 10여 년 전 감귤교류협력이 남북협력 1.0 버전이었다면 앞으로 교류협력 2.0 버전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0년대 남북교류협력이 1.0 시대였다고 한다면 김정은 위원장 시대 북한의 정책 변화에 맞춰 교류협력 2.0 시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지자체의 역량이 강화된 만큼 지자체 중심의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감귤이 제주 ‘평화의 섬’의 이미지를 구축했듯이, 앞으로 매년 열리는 <제주 평화와 번영 포럼>에 북한을 초대하는 방안도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평화연구원이 논의 중에 있습니다.”

 

특산물 교류로 굴뚝 없는 산업 키운다 

제주 평화와 번영 포럼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다녀갔다. 북한 대표단이 제주도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에 참여할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다. 

이처럼 제주도가 남북교류협력 2.0 시대에 주목하는 부분이 지자체간 교류협력이다. 제주도는 지자체 교류 대상으로 백두산을 품고 있는 양강도를 지목하고 있다. 양강도 혜산시는 약 3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압록강, 두만강, 백두산, 개마공원을 끼고 있다. 인구 31만의 양강도 삼지연군은 김정은 시대 국제관광지 건설을 시작해 삼지연 공항 확장, 호텔 건설이 진행 중이다.

고성준 원장은 북한이 굴뚝 없는 산업으로 바로 직행할 수 있는 지역이 삼지연이라고 했다. 북한이 관광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만큼, 삼지연-제주 패키지 관광은 현실성 높은 대안이라는 것이다. 제주의 특산품 한라산 소주, 삼다수 등 특산품을 양강도의 특산품인 홉과 들쭉 등의 특산품과 교류한다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양강도는 맥주 원료인 ‘홉’이 특산물입니다. 북한의 홉과 제주도 삼다수로 맥주를 빚는 사업도 구상할 수 있습니다. 지역 결합상품이죠. 제조업뿐 아니라 약초나 산채 등 건강식품을 공동개발하고 보건의료 분야에서 협력하는 방안도 유망합니다. 양강도 종합체육단이 제주에서 동계훈련을 할 수도 있고요. 도민 간 사회문화 교류, 농업, 대학 간 교류 등 다양한 교류협력 사업의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경기도, 강원도 등 접경지역은 군사분계선과 인접해 있어서 남북교류협력 사안이 다양하게 제기되는 지역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제주도는 북한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제주도만의 특성은 무엇일까. 제주도의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도민의 자발적 참여’로 시작한 배경은 무엇일까?
 

어느 지자체보다도 평화 위해 앞장설 것

“제주도는 4·3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분단에서 비롯된 비극을 겪었기 때문에 다른 어느 지자체보다도 남북의 화합과 평화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한라산과 백두산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분단의 비극을 극복하자는 도민의 의지가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고성준 원장은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제주도로 내려와 1978년부터 제주대학에서 북한, 통일 분야에 몰두했다. 북한연구에 대한 관심이 시들할 때 선구자의 길을 걸은 것이다. 고성준 원장은 제주도의 아픔은 분단의 아픔이고, 그 아픔의 해소가 통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 퇴임 후, 함께했던 교수들과 함께 제주통일미래연구원을 결성해 남북화해 시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제주통일미래연구원은 제주의 젊은이들이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2018년 1월 세계평화의 섬 범도민실천협의회는 고성준 제주통일미래연구원장을 의장으로 선출했다. 

고 원장은 인도적 지원이 절실할 때 감귤보내기 운동에 참여해 12년간 남북 관계 개선에 몰두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을 더 잘 알게 되고, 고성준 원장이 품은 백두한라가 만나는 꿈은 더욱 무르익었다. 

고성준 원장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 미래의 제주도를 위해 감귤처럼 남북이 윈윈하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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