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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선봉특집] 북방경제의 길을 묻는다
[나진선봉특집] 북방경제의 길을 묻는다
  • 황의철 자유기고가
  • 승인 2019.09.3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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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항을 둘러싼 북중러와 미국의 세력다툼

나진선봉은 북중러 3국의 국경이 맞대고 있어 투자 유치가 용이하고 국제무역지대로 발전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강대국이 다투던 역사적 배경 아래서 나진선봉을 이해한다면, 앞으로 우리의 북방 진출은 보다 현실성을 갖게 될 것이다. 북방경제의 꼭지점인 나진선봉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각국의 이해충돌 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국익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 황의철 자유기고가


블라디보스톡에서 나진까지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창밖으로 논의 흔적이 보인다. 19세기 ~ 20세기 초에 한인들이 가난과 박해를 피해 만주, 연해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한인들이 일군 논의 흔적이 지금은 습지로 남아 있다. 이곳에 정착했던 한국인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연해주는 러시아가 19세기 러시아 제국주의가 동방 진출로 얻은 땅이다. 러시아는 19세기 중반 쇠락한 청나라와 아이훈 조약 등을 맺고 아무르주, 연해주, 사할린주, 유대인자치주와 하바로프스크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취득했다.   

이후 러시아는 1903년 총 연장 9천 km에 이르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을 건설했다. 역사가들은 이 철도가 일본의 한반도 종관철도보다 먼저 개통되어 러시아 육군을 수송했더라면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청나라로서는 연해주를 러시아에 빼앗긴 구원(舊怨)이 남아 있다. 1689년 표트르 대제가 아무르강(흑룡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해 청조 강희제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을 때까지도 연해주는 러시아에 편입되지 않았었다. 청나라는 19세기 아편전쟁에서 패한 후 홍콩을 영국에 빼앗기고, 연해주를 러시아에 넘겨주었다. 이후 극동지역의 패권을 상실했다.

시베리아 철도와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철도는 이처럼 제국주의 시대 군사전략적인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이제 우리는 남북의 철도를 연결해 시베리아를 횡단해 유럽으로 뻗어나가려 한다. 

하지만 부산이나 목포가 한반도 열차의 출발역이지만 러시아 입장에서 열차의 도착지가 한반도를 향한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동아시아 자원과 상품을 가져와 모스크바를 물류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러시아의 구상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이 건설한 철도가 지금 나진항 앞까지 연결되어 있다. 

3국이 맞닿은 두만강 하구에서 100여년 전 강대국의 세력충돌의 역사가 재연되고 있다.

   

차항출해, 남의 항구를 빌려 바다로 나간다 

황금의 삼각주라 불리는 두만강 접경지역에는 아름답고 조용한 나진항이 있다. 나진항 앞바다엔 대초도, 소초도 두 개의 섬이 파도를 막아주고, 항만은 수심이 깊고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엔 강대국의 세력관계가 얽혀있는데다 미국의 제재가 겹쳐있다. 

1991년,  UNDP(유엔개발계획)는 나진, 훈춘, 포시에트를 국제적 투자지역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북한도 같은 해 ‘라선경제무역지대’를 특수경제무역지대로 선포했다. 나진항, 선봉항, 웅상항의 항만을 개발하고, 산업지대, 제조업기지, 관광지로 건설하려고 했다. . 
이 사업에 한국,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일본 등 6개국이 참여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두만강개발계획은 진척되지 않고 있다. 현재는 GTI(광역두만강개발계획)로 명칭이 변경되었지만 북한은 탈퇴했다. 

2012년, 중국은 나진선봉지구 공동개발을 위한 북중 관리위원회를 출범에 합의했다. 길림성과 연변 자치주가 나서 운영계획을 수립한 나선 관리위원회는 이 지역을 북-중 합작 경제무역지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장차 국제무역지대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었지만 보다 큰 목적은 나진항을 통해 동해로 진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 최대 상선회사가 참여해 북한의 항구를 빌려 동해로 진출하려는 계획을 수립했다. 

베이징으로부터 나진선봉은 멀리 떨어져 있다. 중국 내몽골, 동북3성 지역의 석탄을 나진항으로 보내 수출한다지만 대련항 루트에 비해 물류비 절감 효과도 높은 편이 아니다. 결국 중국의 진짜 목적은 나진선봉의 지배력을 강화해 나진항을 통해 동해진출의 꿈을 이루려는 차항출해에 있었다.

러시아 역시 자국의 동해 항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진항으로 진출했다. 2000년 푸틴 대통령 - 김정일 위원장은 나진하산 프로젝트 추진에 합의했다. 이후 북-러가 3:7 지분으로 합작한 회사 ‘라손콘트라스’를 통해 러시아의 하산역와 북한 나진항을 잇는 54km 구간 철로 개보수와 나진항 현대화 작업, 복합 물류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 미국 제재에 막히다 

2013년 9월, 나진항에서는 하산역- 나진항간 54km 철로 개통식이 열렸다. 이 사업을 추진한 북한-러시아 철도공사 합작회사 ‘라손 콘트라스’는 러시아 석탄 운송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나진하산프로젝트는 2016년 러시아의 노력으로 유엔 제재를 면제받았다. 하지만 동해로 면한 러시아가 굳이 나진항 진출에 집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러시아는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대영제국 해군에 막혀 발트해 등으로의 진출이 좌절되었다.
러시아는 영국과의 해양진출 갈등을 피해 극동지역에 진출했다. 그리고 연해주를 삼켜 중국의 동해 진출을 막았다. 만일 동해로 중국 상선이 진출하면, 자국 상선 보호 목적으로 중국 해군이 진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극동함대의 군사력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러시아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통한 러시아 천연가스 운송 등 경제적 목적을 표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러시아의 극동지역 영향력 확장에 제동을 걸고 있다. 나진항이 비록 유엔제재에서 풀렸지만, 미국은 독자제재로 나진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현재 정체 상태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독자 제재가 풀리기 전까지는 나진항 항구기능을 회복하기 힘들어 보인다. 2005년 미국 재무부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불법거래를 지목한 것만으로도 예금인출이 일어났듯이, 나진항 석탄거래 중개금융에 은행이 나서질 않는다. 석탄 채굴업자, 러시아 철도회사, 라선콘트라스, 상선회사 등 최소 4개 이상 업체가 관여하는 수출입의 어느 지점에서라도 미국의 제재망에 걸리면 은행은 파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석탄회사도 나진항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부터 동유럽 수출물량 제재 위협을 암암리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항구를 출발한 선박이 6개월 내 미국 항구에 입항할 수 없도록 한 규제도 부담이다. 

현재 라손콘트라스는 나진항 3부두 독점권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북한의 높은 사용료 요구에 막혀 나진항 독점권 확보에 실패했다. 두만강 하구로 빠져나가려던 중국의 계획을 막는 장애물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두만강 철교 아래쪽으로 북러 양국이 자동차 교량을 짓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의 ‘차항출해’ 는 러시아와 북한의 견제를 뚫지 못하고 멈춰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나진 대신 청진으로 가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최근 나진선봉 특구를 바라보는 중국 당국의 시선이 예전같지 않다. 도문시 관리들은 “나진선봉에 관심 없다. 우리는 청진시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훈춘시는 여전히 나진선봉이 괜찮다고 하지만 나진항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멀어진 것만은 확실하다.  

나진선봉은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북방정책의 거점이다. 2013년 11월 한-러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정부가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합의하면서 한국에서 ‘유라시아 드림’과 ‘통일대박’ 논의가 불붙었다. 이듬해 우리 기업들은 라손콘트라스 지분 70% 중 49%를 인수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러시아로서는 자금이 필요했고 박근혜 정부는 나진항 석탄 국내 수송과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수송잠재력을 선점이 필요했다.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외면하고 나진선봉으로 향한 이유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차별화된 정권의 치적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정부와 업계는 나진-하산 프로젝트 재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남북러 철도가 연결되면 북한의 통행료 수입이 늘어나고, 북한도 지분을 참여한 만큼 사업의 안정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나진선봉 지역엔 러시아, 미국, 일본,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등 100개 이상의 외국기업과 수십개 합작기업이 입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진선봉 투자에 주의할 점  

북미협상이 타결된다고 해서 당장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궤도에 오를지는 의문이다. 당장은 나진선봉에 진출한 합작기업에 투자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자금사정이 넉넉한 중국 기업보다는 러시아 기업의 지분 매입이 수월할 것이다. 나선지역 외국 합작기업은 장부상 평가 자산을 실제보다 부풀린 경우가 많다.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나선지구에 투자해야 한다. 

관광산업도 유망하다. 나진항 앞바다는 풍광이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바다 구경을 하지 못한 중국 동북3성 사람들에게 섬과 석호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안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 비교우위를 점한 제조업 진출도 유망하다. 한국 제품을 나진선봉에서 생산하여 동북3성으로 수출한다면 ‘메이드 인 코리아’ 원산지 혜택의 길도 열려 있다. 또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활용해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빠른 길도 있다 . 하지만 TSR의 경쟁력은 점검해보아야 한다. 운송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았고 구간마다 다른 운영체계가 정비되어야 한다.   

 

북방정책의 전략이 필요할 때

분명 나진선봉은 매력적인 땅이자 북방경제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정부가 구상하는 나인브릿지 등 북방정책의 큰 그림은 나진항을 둘러싼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 다양하지 않다. 미중 분쟁이 단기간에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북-미 협상이 진척되어도 풀 수 없는 변수가 있다.  

푸틴 대통령은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한국도 당사자”라며 한반도 관통 가스관 연결에 집착한다. 하지만 미국 펜스 부통령은 올해 초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러시아-독일을 잇는 천연가스관 사업을 중단하라고 강력하게 압박했다. 우리가 중국과 미국을 제쳐두고 러시아와 단독으로 가스관 연결 사업을 할 수 있을까?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은 단기간에 끝날가?

1970년대 닉슨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중국과 손잡는다”는 전략으로 미중 수교를 성사시켰다. 트럼프 행정부가 닉슨의 전략을 뒤집어 중국을 고립시키고 러시아와 손잡을 수 있을까? 사할린 유전을 보유한 엑손모빌의 틸러슨 사장을 트럼프가 국무장관에 임명했을 때 호사가들 사이에 역닉슨 전략이 오르내렸다.  

하지만 우리 힘으로 강대국의 국가전략을 좌우하기가 쉽지 않다.

단, 경제적 동기가 강해지면 지정학적 난관이 돌파된다. 북한을 관통하는 철도 연결은 첫 번째 과제가 될 것이다. 남북이 힘을 합해 강대국의 ‘경제적 동기’를 묶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처럼 나진선봉과 철도를 둘러싼 이해관계는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역사의 땅 연해주로 향하는 정류장에서, 우리 북방정책의 길을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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