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농업협력의 잠재력
남북 농업협력의 잠재력
  • 이태헌 (사)통일농수산 대표
  • 승인 2019.08.2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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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의 농업은 늘 가까이에 있었지만 정작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다. 분단과 냉전 그리고 거친 체제경쟁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북한의 농업을 제대로 보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북한의 농업은 놀라운 성과와 함께 참담한 실패를 동시에 수반했다. 북한의 농업은 수술이 불가피한 낡은 체제에 불과한 것일까?

북한 농업의 두 얼굴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북한의 농업은 한국전쟁 이후 오랜 기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는 세계적인 성공사례로 꼽힐 만큼 놀라운 성장이었다. 전 지구적인 ‘녹색혁명’의 시절에도 그들은 뒤처지지 않았다. 그들은 ‘주체농업’이라 불리는 독특한 농업방식을 완성했다. 농업기술과 농업철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렇지만 북한의 농업이 누렸던 찬란한 영화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과 함께 한순간 사라졌다. 이후 북한은 매년 신년사를 통해 농업부문을 주공전선으로 내세워 왔지만 여전히 만성적인 식량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북한의 농업은 비효율과 낮은 생산성의 대명사처럼 비춰지고 있다.

남측 전문가들은 북한 농업의 이 같은 부침에 대해 △영농물자 제약 △농업기술 부족 △영농인프라 붕괴 △동기부여가 낮은 관리방식 그리고 △잦은 기상재해 등을 꼽는다. 또 최근에는 UN의 제재와 미국의 규제 역시 북한 농업의 회복을 강력하게 옥죄는 주된 요인으로 덧붙이고 있다. 제재국면이 해소된 이후에도 이러한 진단은 유효할 것인가? 우리에게 수수께끼처럼 들리는 대목이다. 

 

‘김정은 시대’의 농업구상

북한은 2016년에 7차 당대회를 열고, 김정은 시대가 본격화되었음을 공식 선포했다. 1980년 6차 당대회를 개최한 이후 36년 만인 일이다. 7차 당대회 당중앙위원회에서 채택한 ‘사업총화결정서’에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2016년~2020년) 기간에 달성되어야 할 세 가지 당면 과제로 △전기·에너지 문제 해결 △경제 선행부문 및 기초공업부문의 정상화 △농업과 경공업의 증산 등이 제시되었다. 여기에는 김정은 시대의 농업정책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사업총화결정서에 따르면 농업부문에서는 우선 경제발전 5개년전략 수행 기간에 식량공급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를 위해 주체농법을 토대로 한 과학농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특히 농업기계화 비중을 60~70%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제시되었다. 이와 함께 우량 품종과 축종을 개량, 보급하여 적지적작(適地適作)하는 것과 유기농법을 장려하고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를 정착시키는 것이 강조되었다.

북한이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으로 전환한 것과 맞물려 이 같은 사업총화결정서의 농업정책은 크게 주목을 받았다. 북한은 이에 앞서 2012년 ‘6.28 방침’과 2014년 ‘5.30 노작’을 통해 현장 생산단위의 자율경영권을 높이도록 했다. 또 분조관리 하의 ‘포전담당책임제’ 도입하는 등 농민의 생산의욕을 고취해 왔다. 

 

북한 농업의 현황 

김정은 시대의 농업구상이 한편으로는 선대의 영화를 회복하는 것이자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의 경제개발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때문에 농업개혁조치의 추진동력은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이란 예측도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농업의 실태는 새로운 정책과제의 실현이 녹록치 않음을 말해 준다.

북한의 농촌인구는 약 1천만 명에 달하고, 농업인구는 약 850만 명 수준이다. 농경지는 약 190만ha로 남한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남한은 휴경면적이 많아 경작면적으로 본다면 북한이 우리보다 30만ha 정도 많다. 논밭의 비중은 북한이 30:70 인데 반면 우리는 55:45로 서로 차이를 보인다. 우리는 영농인프라가 잘 갖춰진 논이 많은데 비해 북한은 영농인프라가 취약한 밭이 많은 셈이다. 

농업용수를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는, 즉 전면적 수리관개가 가능한 북한의 농경지 면적은 논의 경우 60% 내외, 밭은 30% 수준에 그쳐 가뭄에 취약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황해남북도 주요 곡창지대에서 심각한 가뭄피해가 반복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북한의 농업생산성은 남한과 비교해 밭의 경우 60% 미만, 논의 경우 80%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곡생산에 적합한 농지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생산성까지 낮아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축산업은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와 규제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외화부족으로 사료곡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양돈과 양계 산업은 북한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육두수가 감소하거나 제자리 걸음이다. 다만 토끼·염소·오리 등 사료곡물의 의존도가 낮은 가축은 세계적인 사육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최근 북한은 국영농장 중심의 축산에서 부업축산과 협동농장 단위의 자율적 축산을 장려하는 등 열악한 축산물의 수급상황을 개선하려 하고 있다.

 

통계에 보이지 않는 북한 농업

북한은 지난 2008년 ‘인구 총조사’를 마지막으로 실시한 이후 새로운 통계자료를 작성하지 않고 있다. 당초 2016년 UN과 함께 각종 통계자료를 개선하는 사업을 전개키로 하고, 지난 2018년 연말까지 이를 마무리하기로 했던 적이 있다. 이 사업은 올 2019년에 ‘인구주택 총조사’(Population and Housing Census)로 재개될 예정이다. 

유엔인구활동기금(UNFPA)에서 이번 ‘인구주택총조사’를 지원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2020년 제공될 예정이다. 현재 발표되는 각종 통계자료를 통해 북한 농업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 
북한의 식량사정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UN산하의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에서 조사, 발표하는 추정자료를 인용한다. 

북한 주민의 영양상태는 국제NGO 유니세프(UNICEF)의 다중지표군집조사(MICS) 결과를 통해 도움을 받고 있다. 물론 이들 국제기구는 관련 전문성이 뛰어나고 북한에 상주하면서 오랜 기간 추이를 분석해 왔다. 

우리의 경우는 통계청과 농촌진흥청, NGO의 전문가들이 이들 기구의 조사 자료를 보정하여 북의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통계상이 객관성과 신뢰도는 높지 않은 셈이다. 예정대로 2020년에 객관성을 갖춘 통계자료가 발표된다면 우리는 비로소 왜곡 없이 북한을 볼 수 있을까? 

북한농업의 근간인 협동농장의 변화와 협동적 토지소유하의 농장법, 고리형 순환생산체계 장려, 주체농업하의 과학농사 고취 그리고 장마당과 연관된 부업소득 증대 등은 북한 농촌과 농업의 가장 큰 변화를 담고 있고 정량적 통계로만은 읽을 수 없는 영역이다.

빈번한 소통과 함께 신뢰를 기반으로 미래를 구상하는 진정성이 있다면 어쩌면 알 수 있을까?

 

반복되는 기상이변과 자연재해 

UN은 평양에 상주하는 조정관이 조사·취합한 자료를 통해 매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수요’와 ‘우선순위’를 발표해 오고 있다. ‘2019 DPRKOREA NEEDS AND PRIORITIES’의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지속적으로 재발하는 자연재해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적 지원기관 간 실행위원회(IASC)의 ‘위기관리지수’에서도 북한은 재해위험 부분에서 191개 국가 중 39위를 기록했다. 

UN자료에 따르면 2004년에서 2018년 사이에 6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홍수나 가뭄 등의 자연재해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2018년 여름에는 평균 기온보다 11도 이상 높은 폭염이 강타해 작물 생산에 타격을 주었다. 곧이어 8월에 수차례의 홍수가 덮쳤다. 

8월 23일에 상륙한 태풍 ‘솔릭’ 이후에는 강원도와 함경남도 지역에 폭우가 내려 6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큰 피해를 당했다. 또 황해북도와 황해남도는 기습적인 홍수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28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고 적어도 76명이 사망했으며 1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재민이 되었다.

자연재해는 지속적으로 농업 생산에 심각한 피해를 미쳐 농민들의 대처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UN은 지적했다. 그로 인해 비교적 소규모의 재해조차 식량생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해 8월에 발생한 일련의 홍수들은 1만7,000헥타르에 가까운 농경지를 파괴했고, 가축과 양식장에도 피해를 입혀 연간 수확량을 감소시켰다. 이로 인해 이미 불안정한 식량 안보 상황을 더욱 악화되었다는 게 UN의 견해이다.

 

남북, 농업협력으로 윈윈할 수 있다

북한 또는 북한농업은 취약한 농업인프라, 잦은 기상재해, 그리고 제대로 읽을 수조차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혀 의미가 없을까? 아니면 미래의 희망 따위는 없는 곳일까? 
북한농업 전문가들은 미래의 전망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진단한다. 부분적인 제재완화와 함께 남북 간의 경제공동체구상이 진전되기 시작한다면 북한의 농업은 새로운 기회의 영역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남한의 양돈산업은 직간접적인 환경부담금, 질병관리, 지역양분관리제(양분총량제) 예고 등으로 이미 퇴로조차 막혀 있다. 남한의 양돈산업이 북한으로 이전할 수 있다면 한반도 양돈산업은 세계적인 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며, 북한은 고리형 순환생산체계의 완성과 함께 양돈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방역과 질병관리, 검역 등에서 남북이 공동대응할 수 있고 함께 폭넓은 제도적 협력까지 촉진하게 될 것이다. 

남한은 고랭지채소산업은 그 기반도 잃고 있어 대체 생산지가 필요하다. 과수는 기후변화로 인해 빠르게 북상하면서 휴전선 인근으로 모여들고 있다. 인삼은 이미 6년근을 생산할 적지가 태부족이다. 한약재는 국내생산 기반이 사라져 북한산을 반드시 반입해야 할 상황이다.

남북 간의 누에치기협력은 북한의 주요한 외화벌이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농식품은 이미 중국산을 원료로 하는 제품이 대세를 이뤘다. 향후 북한산으로 대체 가능한 성장 산업이다. 농기계·비료·종자·비닐 등 전후방산업은 신규 시장이 절실하다. 

중국산으로 수입되는 농산물만 북한산 반입으로 대체한다면 북한 농업은 새로 전기를 맞게 된다. 북한의 농업인력 자원도 영농설계, 재배기술 그리고 농기계운용 능력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갖추고 있다. 북한의 농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산이다.

남북 간의 농업협력은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협력 시너지가 높아질 영역이다. 북한의 경제개발구에는 ‘농업개발구’가 포함되어 있다. 함경도의 북청과 어랑 농업개발구, 평안도의 숙천 농업개발구, 황해도의 국제녹색시범구 등이 농업 중심의 경제개발구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도 압록강 하류의 황금평 위화도 경제자유무역지대에 농업개발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이미 축산분야에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인 세포축산기지가 세포·평강·이천군을 아우르는 5만ha 면적에 조성되어 있다. 

이들 지역은 문재인정부가 한반도신경제지도 구상에서 밝힌 협력벨트 상에 위치하고 있다. 남북 간에 합의된 철도와 도로 연결이 가시화되면 농업중심 개발구는 남북농업협력의 주요 거점으로 탈바꿈될 것이다. 백두대간을 축으로 산림복원에 관한 합의사항이 이행되면 임농복합모형의 협력사업도 활기를 띠게 될 것이 분명하다.

북한농업의 큰 밑그림을 살펴봤다. 변화의 흐름과 방향을 함께 보고자 했다. 보는 이의 관점이 다르면 북한의 모습은 얼마든지 다르게 비춰질 수 있다. 반세기 분단에 우리는 서로에게 깜깜이다. 그렇다고 작위적인 왜곡은 아니며, 충분히 이를 경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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